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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강제수용소에서 4년 6개월 … 독일인 수녀의 신앙 시집「구름아 너 무엇을 노래하느냐?」

이나영 기자
입력일 2014-07-01 수정일 2014-07-01 발행일 2014-07-06 제 290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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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어서 오시어 저희를 살게 하소서”
1925년 북한 원산에 입국 후 선교 활동 펼치다
종교 탄압으로 옥사덕수용소에 갇혀 노동
본국 송환 60주년 맞아 36편 시 묶어 출간
크리소스토마 슈미트 수녀 지음 / 정하순 수녀·현익현 신부 옮김 / 216쪽 / 비매품 / 툿찡 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해방 후 1949년부터 북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4년 6개월, 한 독일인 수녀가 고통과 절망 속에 써 내려간 시 36편이 「구름아 너 무엇을 노래하느냐?」로 묶여 나왔다. 먹을 것도 부족한 수용소에서 간수가 버린 담배꽁초 종이 위에 손가락만한 몽당연필로 몰래 써내려간 처절한 신앙의 노래들이다.

‘저희는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사오며 / 더위와 추위에 지쳐 죽어가오니 / 주님! / 어서 오시어 해방시켜주시고 / 저희들을 살 수 있게 해주소서’(1950년 ‘대림절’ 중)

북한 원산에서 어린이들에게 교리와 함께 한글을 지도하고 있는 크리소스토마 수녀의 모습(1926년).
시를 쓴 툿찡 포교베네딕도수녀회 크리소스토마 슈미트 수녀(1892~1971)는 독일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최초의 수녀 중 한 명이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북한 원산에 입국한 크리소스토마 수녀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으나 1949년 공산당에 의해 수녀원이 강제 해산되면서 옥사덕(현 북한 자강도)수용소에 갇혔고, 그곳에서 극한의 고통 속에 노동에 시달렸다.

수녀가 갇혔던 수용소는 약 25명의 외국인 선교사가 목숨을 잃은 곳으로, 크리소스토마 수녀는 그곳에서 시를 쓰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전쟁이 끝나 본국으로 송환될 때(1954년)에는 시를 뺏기지 않기 위해 다른 수녀의 상의 어깨 부분에 종이들을 꿰매어 숨겼다.

독일로 귀환 후 크리소스토마 수녀는 시들을 정리했고, 정리된 독일어 원문시는 툿찡 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에 보관돼 있다가 2005년 정하순 수녀에 의해 1차로 번역됐다. 정확한 단어 선택을 위해 1차 번역본을 헨네켄(현익현·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신부에게 의뢰, 여러 차례의 수정 과정을 더 거쳤다. 번역된 시집에는 김정숙 수녀의 목탄화가 삽화로 더해졌다.

툿찡 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원장 최순자 수녀는 “수녀님이 자유를 되찾고 독일로 송환되신 1954년 이후 정확히 60년이 흐른 올해에 시집을 발간할 수 있어서 더욱 기쁘다”면서“단지 하느님을 알리려던 선교사들에게 이 땅은 너무 가혹했지만, 그 어둠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신앙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며 시집 발간 의미를 밝혔다.

혹독한 수용소 생활에도 불구하고 크리소스토마 수녀는 1956년 다시 한국을 찾았고 전쟁 후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1970년 건강이 악화돼 독일로 귀국한 후에도 한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털실로 모자와 장갑을 만들었다.

한국교회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크리소스토마 수녀이기에, 그가 남긴 한국 순교자에 대한 시는 124위 시복시성을 앞둔 현재에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순교자들이여! / 우리는 감사와 기쁨으로 경배 드리오니 / 그분을 위하여 흘린 당신들의 거룩한 피는 /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 되고 / 우리도 같은 사랑으로 / 그리스도께 헌신할 수 있게 빌어주소서!’(‘한국의 순교자들’ 중)

※문의 053-313-3431~4 툿찡 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이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