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다시 원점에 서서 / 최미화

최미화(글라라·매일신문 논설실장)
입력일 2014-04-15 수정일 2014-04-15 발행일 2014-04-20 제 2891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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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렇게 위대한 순교자를 내고 있는 이 민족을 버리지 마십시오.”

샤를르 달레 신부는 ‘한국천주교회사’(1874)를 쓰다말고 무릎을 꿇었다. 조선에 온 적도 없고, 조선 천주교인을 만난 적도 없는 벽안의 달레 신부가 조선에서 선교하고 있는 프랑스외방전도회 다블뤼 주교가 멀리 꼬레아에서 보내준 수사본(비망록, 보고, 편지글) 자료로 한국교회의 소중한 사료를 쓰다말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주님, 이(조선) 순교자들에게 인간의 칭찬은 부질없습니다. 주님만이 갚아주실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선조들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순교 장면을 읽는 달레 신부는 복받치는 감동에 사로잡혔다.

다블뤼 주교가 보내온 편지에는 한국교회 초기 박해자들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다산 정약용의 형), 강완숙 골롬바, 권일신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등 순교자들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적혀 있다.

충청도 홍주 부자로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원시장 베드로(1732~1793)는 한번 뿐인 삶에서 영원한 행복을 찾아 집을 떠났다가 천주교를 믿게 됐다. 믿음은 박해로 돌아왔다. 한국천주교회사 상권 368쪽에는 모진 고문을 받은 원시장이 어깨뼈는 으스러지고, 살점은 너덜거렸다고 적고 있다. 혈육을 통해 회유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원시장 베드로의 주님을 향한 붉은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관헌은 원시장 베드로를 매를 쳐서 죽이는 장살형에 처했다. 장살형은 목을 베는 참수, 조르는 교살, 흰 한지에 물을 묻혀 숨막혀 죽게하는 백지사와 함께 한국 천주교인들이 당한 순교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장살 형이니 매질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래도 돌아설 생각을 않는 원시장 베드로를 보고 형리들은 중얼거렸다.

“이 죄인은 맞아도 아픈 줄 모르나 봅니다.”

손가락 끝만 다쳐도 아픈데, 고통스럽지 않을 리가 있나.

형틀에 묶인 원시장이 말했다.

“저도 매맞는 것이 뼈에 사무칩니다. 그러나 천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그를 의지합니다.”

관장은 천주 귀신을 부리는 원시장에게 더 가혹한 매질을 더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한번이라도 신음소리를 내면 배교로 치겠다”고 겁을 주자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홍주 군수가 열을 받았다.

몸이 다 으스러진 원시장을 굵은 밧줄로 묶고 웃옷을 벗긴채 머리끝에서부터 찬물을 부었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을 ‘인간 동태’로 만드는 듣도 보도 못한 형벌이 등장했다. 한 겨울에 머리 끝부터 찬물을 뒤집어쓴 원시장의 사지는 위에서부터 얼어갔다. 그때 원시장의 이승 마지막 찬미가가 울려퍼진다.

“얼어붙는 이 몸을 주님께 봉헌하나이다.”

원시장 베드로와 같은 충청도 홍주 사람인 구성열 발바라(1786~1816)는 경상 감영의 사형장이던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당했다. 경상도지역 박해인 을해박해 때 청송 노래산에서 남편 서석봉 안드레아, 사위 최봉한 프란치스코와 함께 부활대축일날 체포된 구성열 발바라는 혹독한 형벌 앞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으나 사위 최봉한의 격려로 신앙을 지켰다. 1816년 은총의 선혈을 뿌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이시임 안나(1781~1816) 역시 청송 진보에서 잡혀 경상 감영에 이송됐다가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당했다. 대구 관덕정은 대구대교구 제2주보성인인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모신 경당에 세워진 대구대교구 순교기념관이다. 상주 은재 출신인 김윤덕 아가다 막달레나(1766~1816)는 청송 노래산에서 구성열과 같이 체포됐다가 모진 고문으로 경상 감영에서 옥사했다.

이들을 포함한 124위의 순교자들이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시 시복((諡福)된다. 서민적이고, 혁신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가까이서 뵐려고 전국은 지금 입장객 전쟁이다. 대전과 서울을 번갈아가며 아시아청년대회와 시복식을 갖게 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을 계기로 나는 스스로 도전과 쇄신을 다짐한다.

이제, 껍데기 신앙은 버려야할 때다. 순교자들의 영성을 나부터 생활속에서 실천해야한다. 그게 교황님을 맞는 나의 일이자, 세계 어느 나라 보다도 많은 순교성인을 모신 복된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이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와서 위안을 얻고, 평화를 얻어가던 한국교회가 언제부터인지 파열음을 내고 있다. 박해의 칼날 앞에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신앙선조들의 후예들인 우리 한국교회, 교회 쇄신과 영성으로 다시한번 기적을 일으킬 때다.

최미화(글라라·매일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