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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부리망

민병옥(비오·수필가·대구대교구 경산 중방본당)
입력일 2014-04-15 수정일 2014-04-15 발행일 2014-04-20 제 2891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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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부리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신명기 25,4)

부리망은 소를 부릴 때에 소가 곡식이나 풀을 뜯어 먹지 못하게 하려고 소의 주둥이에 씌운 입 가리개로 가는 새끼줄로 그물같이 엮어서 만든 것이다. 일하는 짐승이 그 땅에 있는 것을 먹는 것은 곧 소망이다. 일하면 먹을 수 있다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희망이다. 그런데 부리망을 씌워서 먹을 수 있는 소망을 절망으로 만든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소가 농사일을 돕는 소중한 가축이며 재산을 증식하는 귀한 존재로 가족처럼 여겼음을 기억하고 있다. 모내기 때나 가을걷이할 때쯤이면 소는 쉴 새 없이 일해야 한다. 일에 지친 소들이 배가 고파 남의 논에 들어가 자라는 모를 싹둑싹둑 잘라 먹거나 다 자란 벼 이삭을 뜯어 먹기도 한다.

들판에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바람결에 일렁이며 춤을 춘다. 농부들이 농사지어 추수를 앞둔 알곡을 남의 소가 뜯어먹어서는 안 되기에 부리망을 씌운다. 소는 얼마나 배고파 먹고 싶은 충동에 부리망 사이로 혓바닥이 날름날름 들락거린다. 그때 어린 나는 농부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배려는 이해되었으나 소에게는 가혹한 행위가 아닐까 싶었다.

자유의지와 행위의 선택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인가? 그렇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리는 주인인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간다. 인간을 주인으로 섬기는 모든 것은 종으로서 주인의 뜻대로 살아간다. 그러니 항변 한번 못하고 묵묵히 일하며 종의 낮은 자세로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하느님의 종인 우리에게는 부리망이 없어도 될까? 인간은 교육을 통해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줬기에 절제와 자제력으로 사리를 구분하여 행동하기에 굳이 부리망이 필요 할까 싶다. 그러나 요즘 세태를 들여다보면 많이 달라졌다. 때때로 먹어야 할 것을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대는 것 같다. 풍요로움이 낳은 비극이다. 자제력을 잃어 먹기만 한다. 그러니 비대하여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그래 놓고는 물리적으로 살을 빼느라고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 베트남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월남전을 치르고 폐허에서 일어나 경제 발전이 우리나라의 70년대를 연상케 했다. 다들 경제 활동에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뚱뚱한 사람을 보기는 보물찾기보다 어려웠다. 하루 세끼 때우기도 힘든 지경에 먹을 것이 있어야 제제할 부리망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네들이 부러워하는 한국 사람은 배가 나온 뚱뚱한 사람이라고 한다. 돈이 많은 부자라 잘 먹기 때문이란다.

우리에게는 먹을 것을 통제하는 부리망도 필요하지만, 남의 일을 함부로 지껄이는 입조심의 부리망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말이 씨가 되는 것처럼 주워 담지도 못할 말을 함부로 내뱉어서야 되겠는가. 내뱉은 말은 꼬리를 부풀리어 잘도 돌아다닌다. 그래서 상처를 주고받아 등을 지고 살아간다.

부리망은 구속이요 통제이다. 말 못하는 소가 일을 하는 동안에 부리망을 씌우는 것보다 시도 때도 없이 먹고 남의 말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부리망이 필요하지 않을까.

민병옥(비오·수필가·대구대교구 경산 중방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