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의관의 병영일기] (4·끝) 소수 병과 전문성 인정을

배영대 대위(프란치스코·학생군사학교 군의관)
입력일 2014-04-15 수정일 2014-04-15 발행일 2014-04-20 제 2891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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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질서에 대한 강한 집착, 전문인 입장서 당혹
군기 잡기보다 열심히 일하는 여건 조성돼야

제가 있는 학생군사학교는 어느덧 4월이 되어 법무사관, 군의사관 훈련이 끝나고 군종사관이 들어옵니다.

군대를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직업군인이 아닌 이상 다시 훈련을 받고 군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신부님들도 자원해서 오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에 마음고생 많이 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어쨌든 군종사제라는 어렵고 힘든 부르심에 순명하신 신부님들께 먼저 감사드리고 올해 6월까지 무사히 훈련을 마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임관하실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저에게 예정된 마지막 기고문으로 욕먹을 각오를 하고 군생활에 대해 투정을 부려보고자 합니다.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법무, 군의 장교로 일하면 편해서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사실 군종을 비롯해 법무, 군의는 군대 내에서 소수 병과로서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곤란한 경우는 군대 내 위계질서에 의해 병과의 전문성이 훼손되는 것입니다. 진료실, 법무실에 들어와 다짜고짜 반말로 시작하는 경우는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인 군의, 법무 장교들의 젊은(?) 나이를 고려해 이해할 수 있지만, 군종신부님에게 ‘OOO 대위’라고 부르며 하대하는 경우를 접할 때면 천주교 신자로서 심히 불쾌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급에 따른 단순한 하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위계질서에 대한 강한 집착이 종종 전문성을 위협하거나 훼손한다는 점입니다.

종파별 특성이 무시당하고 종교행사가 간섭받을 때, 원리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지휘관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법리가 다르게 적용될 때, “이제 갓 전문의가 돼 경험도 부족한 네가 무슨 실력이 있냐”는 말을 들으며 본인이 원하는 치료를 요구받을 때 저희들은 전문인으로서 당혹스럽고 군조직이란 벽 앞에 좌절감도 느낍니다.

다수에 속해 있을 때는 소수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폭력’인지 알 수 없지만 소수에 속해 있을 때는 다수의 폭력을 쉽게 느낍니다. 조직생활의 당연한 생리가 아닐까도 싶지만 소수를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더욱 성숙한 모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군대 내에서 소수인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이러한 폭력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물론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이들 소수 병과에는 군기를 잡기보다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전역을 불과 2주 앞둔 요즘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20대 초반 병사들이 전역 전에 제일 흔하게 느끼는 감정이 막연한 불안감입니다. 저 역시 잠도 잘 안 오고 헤매이거나 시달리는 꿈을 꾸는 걸 보면 나이와 계급에 상관없이 전역을 앞둔 마음은 다들 비슷한가 봅니다. 3년 전 입대하면서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다면, 이제는 민간인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늘 그러하듯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제대 후 바뀐 환경과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제 옆에 언제나 든든한 하느님이 계시니 용기를 내겠습니다.

배영대 대위(프란치스코·학생군사학교 군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