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868) 빈 무덤에 들어가보자 / 김동일 신부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
입력일 2014-04-15 수정일 2014-04-15 발행일 2014-04-20 제 2891호 2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예수 부활 대축일(요한 20,1-9)
빈 무덤을 본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들은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마음이 어땠을까요? 처음엔 놀랐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걱정하면서 달렸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어서 가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경황이 없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란 개념이 어렴풋하게나마 있지만, 마리아와 제자들은 부활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제자 두 명이 달려갑니다. ‘안식일에 누가 예수님을 옮겼다는 말이지? 마리아가 뭔가 잘 못 보고 온 것은 아닌가? 예수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셨던 부활하신다는 말씀이 사실이란 말인가?’ 온갖 생각, 상상이 머릿속을 왔다갔다 합니다.

다른 제자도 그렇고, 베드로도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무덤에는 예수님을 쌌던 수건과 아마포만 놓여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계신 것입니까? 이 무덤에 모신 것이 분명한데, 왜 비어있는 것입니까?

부활을 어떻게 상상하십니까? 거룩한 변모처럼 예수님께서 찬란한 모습으로 ‘짜잔’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까? 천사들과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짜잔’하시는 것입니까? 부활이 죽음을 물리친 승리임은 확실합니다. 승리는 환호성과 축하와 잔치가 있기에 왁자지껄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이겨내신 예수님의 부활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승리의 전리품도 승리의 환호성과 축포도 없습니다. 승리자이신 예수님마저도 계시지 않는 완전히 비어있는 상태에서 부활이 시작됩니다. 마리아도 베드로도 다른 제자도 우리도 부활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여인들과 사람들이 목격했습니다. 부활은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주 아주 조용하게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알려주십니다. 휘황찬란해도 될 것 같은 부활마저도 깊은 침묵과 고독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빈 무덤을 확인한 베드로와 제자는 기뻤을까요? 부활을 알아들었을까요? 이른 아침 고요한 무덤 속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마음이 기쁨과 환희로 충만했을까요? 그 마음 그대로 돌아와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을 알렸을까요? 아마 돌아와서 마리아처럼 다른 제자들에게 무덤에 예수님께서 안 계시다는 말만 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빈 무덤을 보고는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방식인 ‘짜잔’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문을 잠궈 놓고 있던 그 다락방에 ‘짜잔’하고 나타나셔야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티베리아 호숫가에 ‘짜잔’하고 나타나셔서 우리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구워주셔야 믿을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상처에 넣어봐야만 우리는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전례력으로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내 삶에 ‘짜잔’하고 예수님께서 오지 않으셔서 우리는 부활을 지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니면, 내가 사순시기를 제대로 희생과 보속을 하지 않아서 지금 기쁜 부활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기쁨이고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물리치고 새생명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언제나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 선물은 ‘짜잔’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가쁘게 달려간 빈 무덤 안에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 무덤 안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어떤 모습으로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빈 무덤에 들어가 보셔요. 새생명, 부활, 희망은 아무것도 없는 빈 무덤을 꽉 채우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부활은 ‘짜잔’이 아닙니다. 부활은 고요한 빈 무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빈 무덤으로 달려가 부활을 느낍시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