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27) 아름다운 처방전 (2)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03-05 수정일 2014-03-05 발행일 2014-03-09 제 288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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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처방전으로 신학교 전체 파티를 열다?
신장에 있는 결석이 몸 밖으로 나오다가 요도에 상처를 입혀 피오줌이 나온 당시 신학생이던 신부님은 의사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맥주 처방전’을 받아온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원장 신부님은 그 처방전을 유심히 보더니, 또 다시 한 숨을 푹 쉬며 허락을 하며 말하더랍니다.

“아니, 세상에! ‘맥주 마시라’는 이런 처방전이 다 있어? 아이고, 처방전이 이런데 할 수 없지. 그래, 오늘 저녁에 맥주를 적당히 마셔!”

맥주 마시라는 허락이 떨어지자, 경리를 맡던 선배 신학생 방에 가서 말했습니다.

“저기, 방금 원장 신부님께서 오늘 맥주를 마시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경리 담당 신학생은,

“정말?”

그런데 이런! 경리를 맡던 선배 신학생은 피오줌 주인공 신학생의 말을 ‘오늘 형제들 다 함께 맥주를 마셔도 좋다’는 말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이내 곧 밖에 나가서 신학원생들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양의 통닭이랑 맥주를 사가지고 왔답니다.

양손 가득 맥주와 통닭을 사가지고 오는 모습을 본 원장 신부님은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모여 있는 신학원 공동방으로 내려와서 생활 담당 신학생에게 물었답니다.

“아니, 오늘 무슨 일이 있는데 허락 없이 형제들이 맥주랑 통닭을 사먹으려 하는 거지?”

화가 난 신학원장 신부님의 표정을 보자, 영문을 모르던 생활 담당 신학생은 신학원 공동방에 도착한 경리 담당 신학생에게 가서 이 상황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경리 담당 신학생은 원장 신부님께, “오늘 원장 신부님이 맥주 파티 하라고 말하지 않으셨어요?”

“아니, 내가 언제?”

“좀 전에 형제가 와서 저에게 신학원장 신부님이 맥주 마시라고 했다는데요?”

순간, 방에서 쉬고 있다가 신학원 공동방으로 내려온 그 날의 피오줌 사건 주인공은 분위기 파악도 못한 체,

“제 약 사가지고 오셨어요? 저 빨리 약 먹어야 하는데!”

이에 모두가 다, “맥주가, 야-아-악, 아니 맥주가 무슨 약?”

“아침에 피오줌 싼 것이 커다란 결석 때문이고, 그래서 병원 의사 선생님이 오늘 맥주를 마시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맥주 사 달라고 요청했고, 그 처방전은 원장 신부님께 보여 드렸는데!”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도 어떤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맥주와 통닭을 사가지고 온 경리 담당 신학생도 떨고, 그것을 보고 행복해 하던 동료 신학생도 떨고, 생활 부장 신학생은 어쩔 줄 몰라 떨고, 신학 원장 신부님은 ‘부르르’ 온 몸에 치를 떨고!

아무튼 신학원장 신부님은 할 수 없이 ‘맥주 파티’를 허락해 주고 며칠을 말도 못하고 앓아 누었다는 후문이 전설로 남아 있고, 피오줌을 싸던 신학생은 그 후에도 몇 차례 초대형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하느님과 성모님의 보호아래 자신의 성소를 잘 지켜 좋은 사제가 되었습니다. 어때요, 황당한 일! 지금도 그 때의 신학생들이 신부가 되어 함께 모여서 그때의 일을 좋은 추억으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황당한 일은 하느님이 주신 좋은 추억의 선물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