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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이기적인 나태와 무익한 비관주의 / 박영호 편집국장

박영호 편집국장
입력일 2014-03-05 수정일 2014-03-05 발행일 2014-03-09 제 288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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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오랫동안 이른바 ‘제도 교회’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어왔다. 비판의 정당성은 일단 논외로 하되, 짧은 소견으로 볼 때, 이들의 교회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조건 매도하기는 어렵다.

가장 극단적인 교회 비판의 한 사례를 우리는 2000년대 초반 한국교회 온라인을 발칵 뒤집어놓은 ‘한국가톨릭교회해체선언’을 들 수 있다.

‘금구요한’이라는 필명의 한 네티즌이 총10회에 걸쳐 주교회의 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이 글들은 교회에 대한 사랑은 간직하고 있으되, 교회 제도를 해체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단히 센세이셔널한 선언문이었다.

장황하지만 그 주장의 충격을 전하기 위해서 본문을 읽어볼 필요는 있다. 선언문은 말하기를 한국에 참된 의미의 가톨릭교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신성(神聖)을 빙자한 교회의 오만불손한 독선적 권위주의, 교회의 이념으로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부의 축적, 징벌과 보상의 논리로 치밀하게 전개되는 영성의 착취, 사이비과학으로 치장한 반지성적 교리의 정교화, 어떤 파렴치도 정당화되는 선교의 절대화, 정통의 이름으로 묵살해버리는 새로운 상황의 처절한 절규들, 정의로 위장한 권력과 부의 섬김, 사랑이라는 이름의 저주와 경멸들” 뿐이라고 비난했다.

선언문은 따라서 유일한 대안은 교회의 해체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해체를 위한 운동의 주체는 평신도이며, 이 운동은 아래로부터의 영성적 저항운동이고 실천적 신앙의 고뇌로 말미암은 결론임을 피력했다.

난처한 점은 셀 수도 없지만, 우선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제도’의 요소 역시 가톨릭교회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것임에도 그는 ‘제도’의 폐기를 주장하고 나선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지목하는 교회의 악들이 결코 허투루 여길 수 없는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워낙에 센세이셔널한 선언문이고, 극단적 주장이기에 가톨릭 신자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는 부분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개 교회 안에서 나름대로의 소명감을 지니고 열심히 활동하던 평신도들이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 그들은 교회를 떠나거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이기적인 생활인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는 미처 못다 이룬 소명에 대한 갈증과 원망이 분명히 담겨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교회 일꾼들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자세들에 대해서 ‘이기적인 나태’와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교황교서 ‘복음의 기쁨’을 통해서 교황은 “선교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거부하여 마침내는 무기력한 나태의 상태에 빠지고 마는” 상태를 개탄한다. 교황은 또 “복음의 기쁨은 …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악이 그리고 교회의 악이 우리의 헌신과 열정을 줄이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그것들을 “우리의 성장을 돕는 도전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한다.

여전히 어려움과 실망이 있어도 교황의 권고를 따라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효과’일지도.

박영호 편집국장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