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3월의 책장넘기기] 「룻 이야기」

김정수(번역가·여성평화운동가)
입력일 2014-03-04 수정일 2014-03-04 발행일 2014-03-09 제 288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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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온전한 성장 위한 글
제가 번역한 「룻 이야기, 여성이 경험하는 인생의 열두 가지 순간들」이 가톨릭독서문화운동 신심서적33권읽기 중 3월 도서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움과 번역을 좀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2006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성바오로출판사에서 저작권 업무를 담당하던 출판사 직원(파트타임)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여성평화운동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던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도서전에서 만난 미국 Eerdmans 출판사 관계자는 ‘모든 여성들이 인생에서 겪는 12가지의 중요한 사건들’이 「룻 이야기」에 들어 있어서 여성들에게 인생의 멘토가 될 것이라며 한국에서 출판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이 책을 살펴보니 일과 운동, 공부를 동시에 하며 열심히, 한편 고달프게 살던 저 자신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번역할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기 위해 벌써 1년도 넘게 책장에 넣어 두었던 「룻 이야기」를 다시 꺼내 한숨에 읽었습니다. ‘아, 이렇게 한 문장, 한 문장 모두 여성들의 삶에 철저하게 뿌리 내린 영성적·성찰적 글이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자인 키티스터 수녀님이 성경의 룻과 나오미를 오늘을 사는 여성들, 특히 가난한 비정규직·저임금 여성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연결시키고, 종종 수녀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성찰까지도 여성들의 온전한 인간으로의 성장을 위한 자원으로 내어 놓는 것을 보고 새삼 글 쓰는 이로서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느꼈습니다.

실로 저자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인생의 커다란 사건들을 룻과 나오미의 얘기를 통해 우리에게 멘토링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경험하는 ‘상실’, 생존의 터전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급격한 ‘변화’, 여성으로서 ‘나이듦’과 같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지 않는 여성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또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인간으로의 ‘전환’을 통해 전 생애에 걸쳐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 ‘존중’받고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이를 위해 여성들은 삶의 매 순간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야 하며, 주변과 아직 오지 않은 자매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자기 정체성 혹은 ‘자기 규정력’을 길러야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여성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차별하고 있지만, 룻과 나오미는 시대와 제도가 규정한 한계를 넘어서 하느님의 구원사의 중요한 고리를 완성하는 ‘성취’를 끝끝내 이뤄내는, 그리하여 이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영원한 영감을 주는 자매애의 원형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12개의 순간들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또 분명하게 알려주기 위해 키티스터 수녀님은 자신의 수녀됨에 대한 정직한 비판과 성찰까지 감내하면서 모든 자매들을 향한 하느님의 친절한 사랑(헤세드)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셨다고 감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갈피

전 세계의 여성들은 룻처럼 거듭 들판에 남겨진 낟알을 주워 모으고 있다. 룻이 그랬듯이, 하루 일과를 마치며 스스로에게 “오늘 저녁은 먹을 수 있겠어.”하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물론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그러나 또한 그 이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는 할 수 있어”, “내가 해 냈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자아의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더 큰 세상에서 도덕적 존재감을 지니고 영적 대리인이 되는 것에 관한 일이다

(본문 87쪽 중)

김정수(번역가·여성평화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