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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프란치스코 효과, 한국교회는… - 새 교황이 몰고 온 새로운 바람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4-03-04 수정일 2014-03-04 발행일 2014-03-09 제 288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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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교황’ 세계교회는 변화 물결로 출렁인다
로마 관광객·영국 미사 참례자 눈에 띄게 증가
미국에서는 ‘가난’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도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인지도에 긍정 영향
‘효과’ 논하기에는 더 많은 증거 필요한 상황
교황 프란치스코가 2014년 2월 성 베드로 광장 일반 알현에서 신자들을 만나고 있다. 【CNS】
2013년 5월 15일 교황청 공보실에서는 ‘새복음화촉진평의회’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포한 ‘신앙의 해’(2012년 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 중간 보고를 위해 마련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수십년 동안 쇠락의 징후를 보여온 교회 안의 새로운 바람에 대해 언급됐다.

“저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교황이 교회의 가르침을 바꾼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교황 프란치스코가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른바 ‘프란치스코 효과’가 있다는 거지요.”

평의회 의장 리노 피쉬켈라 대주교는 앞서 5월 초 이탈리아 남부를 방문했고, 북부 지역 본당 사제들과 잦은 만남을 가졌다. 그는 “많은 신자들이 고백소를 찾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에 감명을 받아 냉담을 풀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남미 출신의 평의회 사무총장 호세 루이즈 아레나스 주교가 거들었다. 그는 시성식 행사가 있던 5월 12일에 교황청을 찾은 멕시코와 콜롬비아 주교와 사제들을 만났는데, 한결같이 입을 모아 ‘곳곳에서 고백성사를 보는 신자들이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성 주간 동안, 남미교회에서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을 듣고 오래간만에 고백성사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피쉬켈라 대주교에 의하면, 전에는 대개 5만~7만 명 정도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일반알현에 참석했다. 하지만 4월 28일 알현에는 7만 명이 신청했음에도 무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추적거리는 우중에 열린 5월 6일 알현에도 10만여 명이 미사에 참석했다.

“교황이 매우 감동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과 영적인 끈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만나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 후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불과 두 달만에 만들어낸 ‘프란치스코 효과’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6개월 뒤인 11월과 12월, 연말을 앞두고 세계 곳곳에서는 이 새로운 신앙의 활력이 속속 보고됐다.

가장 뚜렷하게 ‘효과’가 나타난 곳은 역시 이탈리아.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세례명으로 1위를 달렸다. 로마는 새삼스러운 관광 특수를 누렸다. 전세계에서 순례객들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2013년 한 해 동안 바티칸을 찾은 관광객은 660만 명, 전임 베네딕토 교황 때인 2012년 230만 명의 세 배에 달한다.

‘프란치스코 효과’(Francis Effect)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이탈리아 사회학자 마시모 인트로비네. 그레고리안대학교 교수인 그는 교황 선출 후 불과 한 달 만에 눈에 띄기 시작한 이 현상이 교황으로부터 온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7개월 뒤인 11월 11일 토리노에서 후속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서 그는 사제들은 50.8%가 이 효과를 느끼고, 특히 수도자들은 79.37%가 뚜렷하게 이러한 현상을 느낀다고 대답했다고 설명했다. 평신도들 역시 44.8%가 이 현상에 동의했다.

인트로비네 교수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면, 최소한 수십만 명이 교회로 돌아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저명한 바티칸 소식통인 존 앨런 기자는 조사 결과를 두고, 교황 선출 한 달 후 실시된 첫 조사, 그리고 7개월 뒤 이어진 후속조사간의 시차를 감안할 때, ‘프란치스코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조사를 실시한 인트로비네 교수는 교황이 이처럼 매혹적인 것은 단지 그의 몸짓이나 언어 구사 등의 외적 요인에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메시지의 중요한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풍요로운 교도권’(rich magisterium)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은 바티칸이 자리한 이탈리아나,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남미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영국과 스페인, 미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지난해 11월 17일자 신문에서, 영국과 웨일즈 지역의 성당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수십년 동안의 침체 끝에 유럽 가톨릭교회의 신앙이 활력을 얻을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교황 선출 뒤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영국의 13개 대성당 가운데 11곳에서 미사 참례자 수가 20%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는데, 여기에는 새 영세자와 냉담자 수가 모두 포함된다. 이 신문은 스페인과 프랑스, 미국 역시 신자 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대교구장 빈센트 니콜스 대주교는 이러한 현상이 명백하게 ‘프란치스코 효과’라고 확인했다.

미국에서는 교황 프란치스코에 매료된 신자들의 통계적 수치를 넘어 종교 지도자들의 논의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보좌주교 로버트 매켈로리 주교는 예수회가 발행하는 잡지 「아메리카」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가난’의 문제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우선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지금 교회가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낙태 문제와 동급의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가난’을 강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참여를 절대적 과제로 여기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주교회의에서 인간 생명과 가정 수호만큼 가난의 문제가 절실하게 논의되도록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심지어 ‘프란치스코 효과’는 미국 워싱턴 정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잡지 「아메리카」 부주필 케빈 플라크는 올초 “자유시장경제가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적절하게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2014년 상하원 선거운동의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부분적이나마 ‘프란치스코 효과’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프란치스코 효과’ 때문에 공화당은 빈곤층을 위한 식료품 할인 구매권과 실업 수당 예산의 삭감을 변명해야 하고, 정가에서 기피용어가 되어버린 ‘가난’이 주요한 정부 정책 논의에 핵심 용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회 안전망 확충보다는 연방 적자 감축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민주당의 최근 행태 역시 비판받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가난’을 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 ‘양당간에 진정한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는 케빈 클라크는, 올 가을 미국 상하원의원 선거 캠페인에서 후보자와 유권자들 공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할 만큼 ‘프란치스코 효과’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빚어내는 놀라운 ‘효과’에 대해서 모두가 명백하게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요청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퓨(Pew) 리서치 센터의 ‘종교 및 공공생활 포럼’(Forum on Religion and Public Life)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3월부터 10월까지 미국 가톨릭교회의 변화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적어도 조사시점에서는) 프란치스코 효과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가톨릭신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22%, 이는 전년도인 2012년 같은 기간 동안의 수치와 거의 유사, 대략 22~23%를 오르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일미사 참례율 역시 39%를 기록, 전년도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프란치스코 효과’가 신빙성을 갖기 위해서는 더 큰 규모의 변화가 객관적으로 나타나야 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노틀담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데이빗 캠벨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 점진적 현상이듯, 돌아오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며 “만약 교황이 사목현장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낼 때 ‘장기적 프란치스코 효과’가 이어질 가능성을 결코 과소평가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3년 ‘올해의 인물’로 그를 선정함으로써 교회 뿐만 아니라 글로벌한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을 인정했다. 1962년 요한 23세, 1994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세 번째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낸시 깁스 타임 편집장은 그가 “가톨릭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효과’라는 용어는 애초 교황의 매력에 이끌려, 사람들이 교회와 복음을 매력적으로 인식하고 돌아오는 현상을 지칭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양상과 범위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참신한 교황’의 매력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