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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04) 순명은 인류 구원의 초석/ 손용환 신부

손용환 신부 (원주교구 안식년)
입력일 2010-12-15 수정일 2010-12-15 발행일 2010-12-19 제 272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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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 (마태오 1, 18-24) : 요셉의 꿈
요셉의 꿈, 필리프 드 샹파뉴, 1642~1643
필리프 드 샹파뉴(Philippe de Champaigne, 1602∼1674)는 바로크시대의 프랑스 화가입니다. 그는 1628년에 루이 13세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주로 종교화와 초상화를 그렸으며, 플랑드르의 사실성과 프랑스의 기품을 겸비한 화가였습니다. 그가 그린 ‘요셉의 꿈’은 마태오복음 1장 18-24절이 그 배경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천사와 요셉과 마리아가 그들입니다. 주님의 천사는 하늘에서 내려와 마리아를 가리키며 요셉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합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지시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목수 일을 하던 요셉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의 발밑에 있는 연장들이 그의 직업을 말해줍니다. 그는 꿈에서 천사의 음성을 듣습니다. 무릎에 두 손을 모은 그의 모습은 천사의 말에 순종하겠다는 몸짓입니다. 성경을 펴고 무릎 꿇어 기도하는 마리아는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오 1,18-19)

요셉은 심하게 갈등했습니다. 그래서 잠을 설쳤고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오 1,20-21)

요셉은 멍청하게도 잠에서 깨어나 천사의 명령을 받아들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마태오 1,24) 요셉의 이 멍청한 행동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셨습니다.”(로마서 1,3-4) 요셉의 순명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잠에서 깨어난 요셉의 행동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불가능한 일까지도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명하는 것이 잠에서 깨어난 행동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 주변에는 불합리한 명령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멍청했습니다. 요셉은 자신과 약혼한 마리아가 자기와 동침하지도 않고 아이를 잉태했는데도, 꿈 한 번 꾸고는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바로 직전까지 남몰래 파혼하기로 작정한 자신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법을 버리고,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느님의 요구를 순순히 따랐습니다. 요셉은 똑똑함보다도 어리석음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믿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요셉의 순명을 배워야합니다.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요셉의 우직함을 배워야 합니다. 이해타산과 세속의 가치 기준에 때가 묻은 사람은 요셉의 어리석음을 배워야 합니다.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보고 외면하는 사람은 요셉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요셉의 멍청함이 인류 구원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의 꿈은 하느님의 뜻이 자기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의 꿈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우리도 요셉처럼 자기의 욕심보다는 하느님의 은총을 채우는 꿈을 꾸고 있습니까?

손용환 신부 (원주교구 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