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오지 방글라데시를 가다
40℃ 넘는 폭염·질병·열악한 주거환경 …
수많은 고통 온몸으로 극복
발행일 : 2010-08-01 [제2708호, 1면]
여자 셋. 겁이 없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30대와 40대의 젊은 그들이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 온몸 던져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아닙니다. 수녀님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어머니입니다.
가톨릭신문이 방글라데시의 젊은 한국인 수녀들을 찾아갔습니다. 일정(7월14~20일)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한국외방선교수녀회 세 수녀들과 함께한 그 묵상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힘들었다. 서울에서 홍콩을 경유, 방글라데시(Bangladesh)의 수도 다카에 도착하는데만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밤 10시 도착한 공항에는 한국외방선교수녀회 방글라데시 공동체 최선미(요셉피나) 책임수녀가 마중 나와 있었다.
“반갑습니다. 먼 길 고생하셨습니다.”
얼굴이 환했다. 그런데 그 환한 환영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비행 여정을 마치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다카에서 처음 만난 것은 푹푹 찌는 날씨였다. 우기(雨期)인데다 온도는 40℃를 넘기고 있었다.
수녀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가려면 다시 차로 8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다. 밤이 늦었다. 다카 시내에 있는 이탈리아 수녀회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숙소로 향하면서 최 수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최선미(요셉피나) 수녀, 고정란(마리피앗) 수녀, 김면정(노엘) 수녀, 셋이 살고 있었다. 세 수녀가 이곳에 온 것은 4년 전. 방글라데시에 진출해 뿌리를 내릴 터전을 잡기까지 4년이 걸렸다. 쉽지 않았다. 장티푸스(typhoid fever)와 뎅기열(dengue fever) 등 수없이 병마와 싸워야 했다. 이들은 변변한 의료시설도, 약도 없는 이곳에서 그 수많은 병의 고통들을 맨몸으로 이겨냈다. 연일 40℃가 넘는 폭염, 열악한 주거 환경도 수녀들을 괴롭혔다.
집에는 쥐가 수시로 드나들었고, 바퀴벌레와 모기, 각종 이름모를 벌레들과의 전쟁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적은 돈을 쪼개고 쪼개서 버티며 살아간다. 살충제 하나 사는 것도 망설여야 할 정도다. 수도회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후원자들이 적기 때문이다. 세 수녀가 먹고 입고 움직이는 월 생활비가 우리 돈으로 월 5만 5000원에 불과하다.
이 고난한 삶은 언제부터였을까.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수녀가 모든 사람을 ‘확’ 끌어들일 것 같은 맑은 미소로 대답했다.
“2006년 4월 29일 오후 2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