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창간 83주년 기획대담] 사제로 산다는 것

주정아 기자,이지연 기자,사진 문수영
입력일 2010-03-31 수정일 2010-03-31 발행일 2010-04-04 제 2691호 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83세 백민관 신부 - 83년 서품 이동익 신부- 83년생 홍성익 신학생의 특별한 만남

“묵묵히 숲 지키는 못생긴 나무처럼 살라”
83세 백민관 신부(원로사목자·가운데), 83년 서품 이동익 신부(맨 왼쪽·가톨릭중앙의료원장), 83년생 홍성익 신학생(가톨릭대)이 만나 사제의 삶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숲에 못생긴 나무가 있다. 곧게 뻗은 나무는 이미 누군가 베어가고 없다. 아무도 베어가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는 상처 나고 굽은 나무는 묵묵히 숲을 지킨다. ‘사제의 삶’은 그런 것이다. 숲을 지키는 못생기고 상처 난 나무처럼 교회를 지키는 것이 사제들이 걸어가야 하는 삶의 길이다.

가톨릭신문은 창간 83주년을 맞아 83세의 백민관 신부(원로사목자)와 83년 서품 이동익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장), 83년생 홍성익 신학생(가톨릭대 신학과 6학년)의 만남 자리를 마련했다. ‘사제의 해’를 보내며 내적 쇄신을 향해 나아가는 사제들에게 솔직담백한 ‘사제들의 삶’에 대해 들어본다.

“사제는 공적인 일에 자신 희생하는 직분”
“생명운동 힘들었지만 생명대학원 설립 때 보람 느껴”
“늘 보듬어주고 격려해 주시는 신자들께 감사”

- 사제 직분에 대하여

▲83세 백민관 신부
: 사제는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일을 이루고 공적인 일을 이루기 위해 생활을 희생하고 개인을 희생해야 합니다.

▲83년 서품 이동익 신부 : 백 신부님의 말씀처럼 사제란 하느님의 계획에 정진하는 사람이죠. 사제 직분도 여러 형태로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모두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 형태로서의 작은 직분입니다.

▲83년생 홍성익 신학생 : 저는 아직 사제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만,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것의 핵심은 ‘선포와 봉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나라, 복음 선포를 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설교를 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자로서 신자들을 이끌고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제의 길 걸어가고자 선택한 계기

▲이동익 신부
: 본당 신부님은 신학생들을 많이 이끌어주시죠. 저도 성수동본당 주임신부님이셨던 멕시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신부님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주일 가정방문을 갈 때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어요. 당시만 해도 성수동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뚝방촌이 있었습니다. 그런 지역을 열성적으로 방문하시는 신부님을 보면서 사제의 삶이 보람 있는 삶이라는 걸 느꼈고, 신부가 되고자 결심하게 됐습니다. 신학교에 와서는 규칙에 따라 살아가기 바빴지만 그때의 다짐과 신부님께서 주신 영향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백민관 신부 : 모든 것에 능통한 본당 신부님을 보면서 신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릴 때부터 복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제의 삶으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하느님께서 “너는 여자와 같이 못 산다”고 계시를 내려주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 사제직의 롤모델은

▲홍성익 신학생
: 저는 아버지 신부님이신 조순창 신부님을 존경합니다. 신부님께서 본당을 떠나시면서 성가정의 중요성과 자녀교육 등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정말 신자들을 사랑하시는 착한 목자라 생각했습니다.

▲이동익 신부 : 아까 말씀드린 본당 신부님은 지금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한국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환갑이 지나 로마에서 임상사목 과정을 밟고 오셔서 현재 중앙대병원 원목사제로 활동하시며 사제의 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교회가 원하는 것을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시며 모범을 보여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후배사제들 중에도 참 열심히 살고 모범을 보여주며,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분들도 계시고요.

▲백민관 신부 : 각자의 소임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제라면 누구라고 지칭할 것 없이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 사제로, 신학생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아쉬움의 순간은

▲백민관 신부
: 신부가 된 이후 대부분의 생활을 학교에서 보냈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신부가 될 때였습니다. 사제가 된 제자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해냈구나하고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이동익 신부 : 1991년 귀국 한 이후 쭉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을 시작으로 의과대학교수, 생명대학원장으로 살아오면서 ‘사제 양성’은 아주 큰 보람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반면, 생명운동을 하면서 힘든 고비도 많았습니다. 교회가 저에게 사명과 충분한 배려를 해줬지만 고독하고 힘들 때가 많았죠. 특히 2005년 생명윤리법이 통과됐을 때는 교회가 반대하는 반생명적인 법이 만들어진 것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어요. 그 과정에서 외톨이라는 느낌도 컸습니다. 하지만 2007년 생명대학원의 설립으로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난 15년간의 일들이 지금의 결실을 가져왔구나하고 기뻐했죠.

▲홍성익 신학생 : 학기 중에는 학교에만 있지만 방학기간에 본당과 각종 행정 체험을 합니다. 그때마다 신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자들이 보듬어 주시고 격려해주심에 항상 감사드리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기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료 신학생들이 다른 길로 걸어가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배 신부님들께서 못생긴 나무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충고를 해주셨고, 그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래서 선배 신부님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제로서의 삶을 지탱해준 신부님들만의 특별한 힘은 있으셨는지요.

▲백민관 신부 : 신학교에서 받은 훈련이 큰 힘이 됐어요. 가족들과 더불어 편하게 살아갔던 것과 달리 신학교에서는 공동생활과 개인적인 고독한 생활을 동시에 보내야 했죠. 이를테면 독방을 주고 혼자 생활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6년간 훈련을 받고 나니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신학교의 교육이념이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동익 신부 : 신부로서 멋있게 잘 지낸다는 의미를 이야기하자면, 혼자서 지내는 것도 즐겁게 지낼 수 있어야 하고, 여럿이 있는 것도 즐겁게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독을 즐기는 것은 신학교 때부터 익숙해져야 하고, 이는 사제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신부님들과 나누고 마음을 여는 것도 역시 사제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고 큰 도움이 됩니다. 결국, 혼자서도, 여럿이도 잘 지낸다면 사제로서 멋지게 산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

▲이동익 신부
: 사제의 해를 지내면서 교황께서는 키워드로 ‘그리스도께 충실’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요즘 후배들은 우리 시대 사제들에 비하면 뭐든지 잘합니다. 강론도 잘하고, 기획 아이디어도 좋고 가끔은 부럽기까지도 하죠. 그러나 자칫 ‘기능 중심으로 갈 수 있겠구나’라는 우려가 생기기도 합니다. 뭐든지 잘해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제2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제들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백민관 신부 : 취미를 하나씩 가지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싶습니다. 늙어서 고통스러운 것은 할 일이 없다는 거예요. 눈이 아프니 책도 보기 어렵고, 몸이 아프니 뛰지도 못하죠. 그럴 때 일수록 혼자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70세까지는 이것저것 할 수 있으니까요. 취미도 본인만의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별명이 ‘동키하테’였어요.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테니스를 열심히 했거든요. 테니스는 이제 못하지만 겨울만 되면 스키를 탔는데 이번 겨울이 가면 또 어떻게 생활할 지 걱정스럽기도 해요(웃음).

- 이 시대, 한국교회에 필요한 사제의 모습

▲백민관 신부
: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제입니다. 사제직분, 사제생활은 개인 생활이 아니라 교회에서 정해준 테두리 안에서의 생활이에요. 교회 발전을 위해 정해진 여러 규정이나 직무 등을 잘 하고, 각자 맡은 직무에 충실한 것이 사제로서 가장 보편적이면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제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창간 83주년을 맞이한 가톨릭신문에 대해

▲이동익 신부
: 가톨릭신문에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1992년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입법예고가 있었는데, 이는 우리교회 생명운동이 재발화한 시발점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신문은 그 사건과 관련해 신자 생명의식 현황, 교회의 생명의식 등에 대해 매우 심도 깊은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사의 중요한 부분을 모두 가톨릭신문을 통해 알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정말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신자들의 생명의식을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됐죠.

앞으로도 우리사회에 교회가 함께해야하는 문제에 대해 심층보도하고 의미제공을 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가톨릭신문 창간 83주년을 축하하며, 100년, 200년 이상 크게 발전하길 바랍니다.

▲홍성익 신학생 : 교회의 입장을 가톨릭신문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데, 가끔은 신자들의 눈높이에서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기사들도 보입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부탁드리며, 교회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백민관 신부 : 예전에 가톨릭신문에 글도 많이 썼는데, 최근에 신문이 많이 발전한 것 같아 기쁩니다. 앞으로는 대사회적인 관심과 범위로도 시야를 넓혀 사회 정보를 더욱 폭넓게 전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정아 기자,이지연 기자,사진 문수영 (cpi88@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