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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르포]Ⅰ. 사랑으로 부활했습니다 - 간이식 받고 환우 위해 봉사활동하는 심교준 씨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0-03-31 수정일 2010-03-31 발행일 2010-04-04 제 269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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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증자가 내 안에 남긴 사랑… 같은 고통 겪는 이들과 나눕니다
“병원에서 간이식외에 살길이 없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어요. 주님을 원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큰 시련을 통해 삶과 가족의 소중함을  많이 깨달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병은 형벌이 아닌 축복이었죠.”
1998년 2월 15일.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날일지 모를 그날, 심교준(스테파노·57·가락2동본당) 씨의 몸이 부활했다. 간이식 수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 생명을 통해 이어진 사랑이 그를 다시 살게한 것이다.

성공을 꿈꾸며 달려온 평범한 샐러리맨, 심 씨는 1991년 B형 간염 판정을 받았다. 8년에 걸친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챙겨가며 건강을 챙겨온 그에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의사는 안정을 취하며 쉴 것을 권유했지만 40대 가장에게 일을 내려 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위로했다. 치료를 받으며 버텨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여전히 회사도 나갔다. 조심하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침묵의 장기라 불리는 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더 나빠졌다. 검사 결과 간경화였다.

“화가 났습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싶었죠.”

시한부선고가 내려졌다. 검사 결과지에 적힌 병명은 ‘악성 신생물’. 생소하지만 말로만 듣던 간암이었다. 살기 위한 방법은 간이식밖에 없다고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보다 잘못 사는 사람도 많은데 왜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시나’라고 주님을 원망을 했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기에 나한테 이런 벌을 주시나’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소연을 해봐도 결국 남는 것은 병에 지친 몸뿐이었다. 자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 좀 나을까 싶었다. 곧장 짐을 싸서 강원도에 있는 자연 치유소로 향했다. 처음에는 몸이 가벼워지고 효과가 있는 것 같았지만 얼마 후 다시 몸 상태가 악화됐다. 그 길로 다시 서울에 올라와 병원에 입원했다. 죽을 힘을 다해 병과 싸우는 일만 남았다. 수술을 감당하기엔 주변 상황도 신경이 쓰였다. 이러한 생각들은 나중에 그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수술비용이 엄청났습니다. 수술 후 후속 치료에 쓰일 약값도 걱정이 됐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내가 수술을 한다고 해도 5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의 상태는 심각했다. 하혈을 하고 복수가 차서 배에 구멍을 내 뽑아내야 했다. 간성 혼수가 왔을 때는 이상 행동이 튀어나왔다. 종이 위에 자신도 모르는 낙서를 하기도 하고, 화단을 가꾸기 위해 흙을 고른다는 환상에 빠져 화장실 타일 바닥을 긁고 있었던 일도 있었다. 혼수상태에서 병자성사도 받았다.

하지만 이상할 만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다. 세포들은 살아서 팔딱팔딱 뛰었다. 소설, 영화 속에 나온 슬픈 장면들과 달리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1998년 2월 14일 새벽, 공여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왔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15일 수술대에 올랐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병원 중환자실에 있던 조그마한 승리의 성모상을 손에 꽉 쥐고 수술에 임했다. 14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고, 다른 환자보다 어려운 케이스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한 생명이 또 다른 한 생명에게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수술하고 5년쯤 더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심 씨는 지금까지 12년 동안 건강하게 살고있다.

수술 후 부활절, 어느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기증자 얼굴을 알게 됐다.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숭고한 뜻으로 이 못난 생명을 살리게 됐습니다. 저 세상으로 가면 없어질 육신을 이처럼 소중하게 활용하게 허락해주신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사드립니다. 천국에 가셔서도 내내 아름답게 지내시길 기도드립니다.”

겨울을 지낸 나무에 새 잎이 돋듯 몸은 조금씩 회복돼 갔다. 드디어 퇴원이 가능해졌다. 병원을 나서는 순간, 봄이 완연했다. 병원 주변 산에 핀 아카시아 꽃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이식을 받지 못했더라면 그해 2월을 넘기지 못했을 자신이 2월에 다시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는 기증자가 자신에게 남기고간 사랑을 다른 이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의 도우미가 되기로 한 것이다. 바로 ‘동인회’ 활동이다. 2001년 6월 설립된 동인회는 서울성모병원에서 간 이식 후 건강을 되찾고 행복한 삶의 의미를 누리고 있는 이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으로 ‘동그랗게 인정을 나누는 모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2008~2009년 동인회의 3대 회장직을 맡았다.

그를 비롯한 동인회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 전·후의 환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상담도 하고 있다. 동병상련의 경험자들이 내놓는 조언들은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심 씨는 또 한국간이식협회(비영리 법인)와 연계, 간이식 환자들의 복지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지금 살아있음에 느끼는 이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저에게 뭘 기대하시기에 저를 다시 살리셨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 봅니다. 저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런 시련을 주셨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병마와 싸우면서 느낀 가족의 소중함도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가족 또한 그를 다시 살게 한 원동력이 됐다. 병수발을 해준 아내는 물론이고, 아버지 힘내라고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보내준 딸, 한창 부모 손을 타고 공부에 집중해야할 시기에 어려움을 견뎌준 아들이 있었기에 다시 주어진 새로운 삶이 더욱 소중하다.

“아내가 예전 이야기를 하며 푸념을 늘어놓을 때면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미안함을 전합니다. ‘당신에게 하느님께서 복을 주신 거야. 이 세상 그 무엇 중에 사람 살리는 것보다 큰 은총이 어디있겠어?’ 라고요.”

심 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오늘 하루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그것이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해준 이들을 위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국내 최초 법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올 3월부터 광운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잠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번역일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저에게 주어진 병이 형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제가 깨닫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았다면 어쩌면 진작 제 생명을 앗아가셨을지도 모릅니다. 새롭게 주어진 삶을 부활의 삶으로 살아가겠습니다.”

1998년 간 이식 수술 다음날 병실에서 회복 중인 심교준 씨.
이식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해 심 씨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니는 모습.
심 씨가 서울성모병원에서 간 이식 후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임인 ‘동인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간 이식 수술 전·후의 환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상담해 주고 있다.

이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