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일상의 기적 / 김정인

김정인 (아녜스) 시인rn
입력일 2018-09-11 수정일 2018-09-11 발행일 2018-09-16 제 311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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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속담에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심히 듣던 이 말이 새삼스러운 건 예기치 못한 비보를 접할 때다.

며칠 전 승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척 아이가 말의 갑작스러운 뒷발질에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 당해 의식을 잃은 그 아이의 얼굴은 뼈가 깨지고 일그러졌다고 했다. 그 애의 할머니인 나의 시누이는 어느 때보다 절망하고 상심해 하늘이 무너진 듯 주저앉아 있었다.

6시간이 걸린 대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데, 오전에 통화했던 시누이의 전화 속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몇 시간 후 어떤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함께 영화 보러 가자”고 하시던 평화롭다 못해 한가했던 시누이의 목소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라는데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이 일상의 기적임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지인의 중병 소식에도 “왜 느닷없이 그런 일이? 주님, 고통 없이 투병하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한숨처럼 터져 나왔었다. 예쁘고 총명했던 고향 친구가 이제는 혼자선 거동이 어렵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로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소식에는 “부디 그녀가 더 이상 힘든 일을 겪지 않게 해 주소서”라며 생각날 때마다 화살기도를 쏘아 올리고 있다.

‘힘들다’, ‘아프다’, ‘돌아가셨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요즘은 누군가의 소식을 접하는 게 두려울 때가 많다. 산다는 건 생로병사를 거치는 일이기에 항상 좋은 소식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삶의 무게가 버거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들은 모두가 짠하다. 멀쩡한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내 의지대로 어딘가 갈 수 있는 것. 이 모든 하루하루가 기적임을 잊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인다.

내가 10대였을 때, 나는 40대인 어머니를 보고 이제 여자로서는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20대일 때는 60대가 할머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60대가 돼 보니, 내 마음은 여전히 소녀이고 지금부터가 청춘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서 내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젊은이를 보면 ‘벌써 내가 어르신으로 보이나?’하면서 얼핏 놀라기도 한다. 옆자리의 여자가 동행한 친구에게 “70세가 된 어머니가 새 가전제품을 들였다”며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욕심을 내느냐”며 투덜대고 있는 걸 보고 한동안 어이가 없어지기도 한다. “늙어서 오래 살면 뭘 해”라며 자신은 80세까지만 살고 싶다는 그 여자는, 70세가 된 자신의 어머니를 세상 다 산 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무엇이 불편한지 계속 역정을 내고 있었다.

“이 나이에 뭘”, “이젠 늙어서.” 요즘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들이다. 자주 만나는 지인이나 동료들 중에는 비록 피부는 탄력을 잃고 백발이 나도, 다른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지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을 보면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그런데도 겸손 아닌 겸손으로 나이 듦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기(氣)를 꺾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걸어 다니면 그게 기적이고 축복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다. 건강하면 다 가지는 것이라는 걸 명심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내 안의 기가 방전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정인 (아녜스) 시인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