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7) 형제자매의 우애 (하)

김문태(힐라리오) 교수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입력일 2018-08-07 수정일 2018-08-07 발행일 2018-08-12 제 310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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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는 부모의 생명을 나눠 가진 존재
교회가 그리스도 지체로 한 몸 이루는 것과 같아
부모의 지체로서 긴밀히 연결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형제는 동기의 사람이다. 뼈와 살을 같이한 지극히 가까운 친족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하여야 한다. 노여움을 마음에 품고 원망하여 하늘의 바른 뜻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동몽선습」 〈장유유서〉)

조선 중종 때의 박세무는 서당에서 천자문을 뗀 학동들에게 가르칠 교재로 「동몽선습」을 지었다. 그는 여기서 형제자매의 관계에 대한 실례를 들고 있다. 우애가 남달리 두터웠던 사마광은 거의 팔십 살이 된 형 공경하기를 엄한 아버지와 같이 하고, 형 백강은 아우 보살피기를 젖먹이 어린아이와 같이 하였다. 그들은 밥을 먹고 나서 조금 지나면 서로 배고프지 않은지를 물었다. 그리고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서로 등을 어루만지며 옷이 얇지 않은지를 물었다. 공경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남달랐던 것이다. ‘나이가 많아 곱절이 되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십 년이 많으면 형처럼 섬기고, 오 년이 많으면 걸을 때 어깨를 나란히 하되 조금 뒤에 따른다’는 「소학」 〈내편〉에 이르는 말이 사마광 형제의 삶을 지칭한다고 해도 좋을 듯싶다.

형제자매는 동기간(同氣間)이다. 부모가 전해준 생명을 나누어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같은 상에서 함께 밥을 먹고, 같은 방에서 함께 잠을 자며 자랐다. 그런 까닭에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성장한 형제자매를 부모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판소리와 고소설로 잘 알려진 「흥부전」에 등장하는 놀부가 만인의 지탄을 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가 세상을 뜨자 부자였던 형 놀부는 동생 흥부를 구박하고 내쫓았다. 마음씨 착한 흥부는 후에 부자가 됐지만, 형을 원망하거나 복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욕심 많은 형 놀부를 데려다 함께 살았다. 그들은 뼈와 살을 나눈 친밀한 사이, 다시 말해 골육지친이기 때문이었다. 오늘까지 흥부를 칭찬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형제자매는 네 것 내 것이 없는 무간한 사이다. 뼈와 살을 나누고 생명을 나누었는데, 무엇을 못 나눌까.

형제자매의 관계는 마치 교회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한 몸을 이루는 것과 같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는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당신 몸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교리서」(806항, 872항)는 교회공동체의 모든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몸은 단일하지만, 지체는 다양하므로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조건과 임무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에 협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의 위상과 역할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형제자매는 부모의 지체로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기」 〈백이열전〉에 소개되고 있는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감동을 주는 까닭이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였다. 부왕은 아우인 숙제를 왕위에 앉히고자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숙제는 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백이는 아버지 명령을 어길 수 없다며 나라를 떠났다. 숙제 또한 형을 제치고 왕이 될 수 없다며 길에 나섰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문왕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그 아들 무왕은 부친상이 끝나기도 전에 정벌에 나서자 형제는 그를 말리며 한탄했다. 결국 둘은 수양산에 숨어 지내며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죽고 말았다.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위나 재산을 두고 형제자매간에 피를 흘린 일은 부지기수였다. 소위 ‘형제의 난’이라 불리는 정치계의 권력 다툼과 경제계의 재력 다툼이 그러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왕위를 두고 서로 양보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형제는 급기야 그 나라를 떠나고 말았다. 형제간의 시샘과 반목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처럼 우애를 중시 여기던 형제는 불의에 항거하며 서로 의지하며 살다 마침내 함께 세상을 떠났다. 형제간의 도리를 알았기에 함께 갈 수 있는 길이었다. 범상한 이들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일심동체인 형제가 서로 의지하며 상생하기를 바랐던 마음이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이루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형제자매를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형제자매를 뼈와 살을 나눈 동기간이라 여기고 있는가. 부모로부터 생명을 나누어 받은, 터럭만한 틈도 없는 일심동체로 인정하고 있는가. 살아있거나 세상을 떠난 부모 보듯이 형제자매를 보고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각박해진 듯하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그것들은 주님과 사람 앞에서 아름답다. 형제들끼리 일치하고 이웃과 우정을 나누며 남편과 아내가 서로 화목하게 사는 것이다.’(집회 25,1)

김문태(힐라리오) 교수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