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47) 수녀님, 그게 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8-07 수정일 2018-08-07 발행일 2018-08-12 제 310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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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열흘 동안 혼자서 국내에 있는 성지를 순례하면서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그 외에는 기도하며 걸었습니다. 그때 정말 아쉽다고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길은 사람이 안전하게 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시골길은 인도인지 차도인지 구분이 안 되고, 그 사이로 대형트럭은 쌩– 쌩– 달리고. 아무튼 순례를 통해 좋은 묵상의 시간을 가졌고, 일정의 막바지에 어느 수녀원에서 묵었습니다. 그 수녀원은 산속 깊은 곳에 있었으며, 수녀님들이 노동과 기도를 하며 하느님 안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도착한 날 저녁, 손님방에 짐을 푼 후에 수녀원에서 해 주신 닭죽을 먹고 푹 쉬었습니다.

그다음 날 새벽, 여름인데도 수녀원은 산속에 있어서 그런지 싸늘했습니다. 간단히 씻고 수녀원 성당으로 걸어가는데 허벅지 부분 어딘가가 따끔거리며 쓰라렸습니다. 그래도 태연하게 성당으로 가서 수녀님들과 성무일도를 바치고 미사를 봉헌한 후 다시 손님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허벅지 주변이 쓰라렸습니다. 그래서 방 안에서 바지를 벗고 허벅지 주변을 살펴보니, 사타구니 주변으로 심한 땀띠 같은 것이 나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전날 오전부터 걸을 때마다 허벅지 부분이 쓰라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를 약도 없는데 어쩌나!’ 그런데 아픈 곳을 확인하고 보니 쓰라림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수녀님의 목소리,

“강 신부님, 식사하세요.”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바지를 입고, 쓰라리지 않게 천천히 걸어서 수녀원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침을 먹는데 그 부위가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순례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 여기가 마지막 순례지인가! 오전에 약국이나 한 번 찾아볼까! 그런데 이 산속에서 약국은 어떻게 찾지!’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수녀원 식당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손님방 쪽으로 가면서 어그적거리며 걷는데, 때마침 어느 수녀님 한 분이 마당에 있는 개에게 밥을 주러 나오시다가 나의 걷는 모습을 뒤에서 본 모양입니다. 수녀님은 안쓰러운 목소리로,

“강 신부님, 걷는 게 어찌…. 너무 걸어서 다리가 아픈 거예요?”

순간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그 수녀님을 보는데, 나의 이 아픈 부위와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가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수녀님, 그게, 저…, 허벅지에, 아니 허벅지보다 조금 더 위, 그 주변에…, 붉은 반점 같은 것들이 띠를 이루며 생겨났는데…, 그게 지금 벌겋게 부어올라, 혹시 바르는 약 아무거라도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걷기가 좀….”

그러자 그 수녀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아, 강 신부님, 사타구니 옆에 땀띠가 심하게 났군요. 잠시만요, 제가 약을 갖다 드릴게요.”

수녀님은 마당의 강아지에게 밥을 다 준 후, 수녀원에 들어갔다 나오셨습니다.

“신부님, 지금은 따로 준비된 약은 없고 이 연고를 바른 후에 이 약을 그 위에 한 번 더 발라 주세요.”

그 당시 수녀님의 말씀에 큰 감동을 했습니다. 나는 수녀님께 부끄러워서 ‘사.타.구.니’라는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수녀님이 내 아픈 부위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니 고마웠습니다. 나는 웃으며 수녀님에게 말했습니다.

“수녀님이 주신 이 약은 만병통치약입니다. 하하하.”

정말이지 그날, 수녀님이 주신 연고 같은 그 약은 만병통치약 같았습니다. 특히 그 약은 내 안에 있는 괜한 부끄러움까지도 자연스럽게 치유해 주는 그런 고맙고도 소중한 약이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