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하느님을 만나는 산] (4·끝) 수리산과 수리산성지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8-07 수정일 2018-08-07 발행일 2018-08-12 제 310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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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오를 때마다 주님께 가까워지는 곳

수리산성지 최경환 성인 묘.

안양과 군포, 안산에 걸쳐있는 수리산. 도심과 인접하고 경관이 좋아 1년 내내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다. 그리고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의 신앙이 살아 숨 쉬는 산이기도 하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사상최악이라고 하는 연이은 폭염에 등산객이 얼마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수리산 곳곳에서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등산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경사가 조금이라도 가파른 곳이면 잘 정비된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200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리산은 등산초보자나 가족이 함께 찾기 좋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게다가 500m도 채 안 되는 높지 않은 산인 것에 비해 경치도 빼어난 편이다. 수리산이라는 이름도 봉우리가 마치 독수리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날씨가 좋으면 395m 높이의 수암봉에서 시화호와 서해도 조망할 수 있다. 수리산의 이름에는 또 다른 의미도 담겨있다. 바로 진리와 이치를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수리산 이름의 유래에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수리사’라는 절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조선시대에 어떤 왕손이 수행을 하다 부처를 만났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수리산은 견불산(見佛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산은 무엇보다 우리 신앙선조들이 진리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찾던 산이기도 하다. 산의 북쪽 골짜기에는 수리산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성지는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마리아) 복자가 일군 교우촌이 내려오던 자리이자, 최경환 성인이 묻힌 땅이다.

산에서 병목안 방면으로 내려가자 성지를 만날 수 있었다. 성지에는 최경환 성인의 생가터에 한옥식으로 지은 ‘최경환기념성당’과 야외미사터, 십자가의 길이 있는 ‘최경환 성인 묘’, 순례자들을 위한 성지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성지에 담긴 역사성과 그 고즈넉한 분위기로 성지는 안양시가 안양8경 중 다섯 번째로 꼽은 곳이다.

표지석에 ‘담배촌’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척박한 환경에서 최경환 성인과 신자들은 담배 농사를 지어 생계를 근근이 이어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담배밭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남아있는 지명에서 성인과 신앙선조들의 삶을 묵상해볼 수 있다.

최경환 성인과 그 가족은 박해를 피해 여러 지방을 전전하다 마침내 수리산에 정착했다. 성인은 종교서적을 자주 읽었고, 만나는 이에게 언제나 복음 안에 숨은 하느님의 사랑을 힘 있게 설파했다. 공소회장으로 활동한 성인은 옥에 갇힌 이들을 돌봤고, 순교자 시신을 매장하면서 사랑 실천에 앞장섰다. 성인은 자신들을 잡으러 온 포졸들에게 조차 융숭한 대접을 하면서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을 실천하기도 했다.

성지 내 최경환기념성당.

최경환기념성당과 순례자 성당을 방문하고 성인의 묘소를 향해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에 최경환 성인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성인은 교우촌의 신자들과 함께 체포돼 이송되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 용기를 내시오. 주의 천사가 금자(金尺)를 가지고 당신들의 걸음을 재고 있는 것을 보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장을 서서 갈바리아로 나아가시는 것을 보시오.”

성인의 말을 떠올리니 묘소를 향해 가는 길에 십자가의 길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제5처,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모습이 오히려 십자가를 지는 모든 이의 곁에 계신 주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주님은 이 산을 오르는 내내 함께 하셨을 터다. 몸은 힘들었지만, 한 걸음 더 오를 때마다 더 하늘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오른 성인의 묘 앞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성인의 전구를 청했다. 삶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는 산길을,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힘차게 걸어나갈 수 있기를.

수리산성지 십자가의 길.

■ 수리산성지 순례와 함께하는 수리산 등산로

수리산성지는 성지순례길 중 산행과 함께 순례할 수 있는 2가지 경로를 제안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안양역(또는 중앙성당)-안양9동(새마을)-병목안 삼거리-수리산산림욕장-병목탑(우측방향)-구름다리-전망대-수리산성지에 이르는 길이다. 2시간30분가량 소요되는 이 길은 수리산산림욕장에서 산세와 계곡을 내려다보며 자연묵상을 겸할 수 있는 경로다.

두 번째 순례길은 안양역(또는 중앙성당)-안양9동(새마을)-병목안 삼거리-수리산산림욕장-병목탑(정면방향)-태을봉(수리산정상)-수리산성지의 여정으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다. 정상을 오르는 만큼 첫 번째 길에 비해 힘이 들지만, 이 산을 넘어 한양으로 신자들의 시신을 거두러 다니던 성인의 산행과 순교를 묵상할 수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