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제18회 가톨릭포럼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8-07-17 수정일 2018-07-17 발행일 2018-07-22 제 3104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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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실상에 익숙해지기 위한 객관적 보도가 관건
전체 맥락 아닌 파편에만 집중하는 북한 관련 현행 보도
우월성으로 북한 주민 설득하려는 태도는 신뢰 떨어뜨려
북한 주민 입장도 아우를 수 있는 전문기자 더 늘어나야

‘제18회 가톨릭포럼’ 참석자들이 7월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남북 평화시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이소영 기자

“희망의 용기를 지니고 ‘평화의 장인’이 되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북 정상회담 이틀 전인 4월 25일 일반알현 중 정치적 책임을 지닌 이들에게 ‘평화의 장인’이 돼 달라고 격려했다. 또 북미 정상회담 이틀 전인 6월 10일 삼종훈화 뒤에는 “한반도와 전 세계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안들이 계속 발전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평화의 길을 걸어 갈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리가 열렸다.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 김창옥, 담당 허영엽 신부, 이하 언론인협)는 ‘남북 평화시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7월 11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제18회 가톨릭포럼을 개최했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는 남과 북이 화해하기 위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발제는 박주화 박사(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영욱 교수(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연구교수) 등 2명이 맡았다. 토론자로는 북한인권정보센터 윤여상(요한 사도) 소장을 비롯해 김현경 북한전문기자(MBC통일방송추진단장),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등 3명이 나섰다.

■북한·통일 관련 객관적이고 전문성 있는 언론 보도 필요

“우리는 왜 몰랐을까?”

김현경 기자는 “최근 시청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북한 여성들을 비롯해 북한의 시장, 휴대전화, 냉면 등 여러 변화들에 대해 왜 우리는 그동안 몰랐느냐고 묻는다”면서 “우리가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보도에 대한 현 상황을 언급하며, 그동안 북한에 대한 보도는 전체 맥락을 살피는 것보다 파편에만 집중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저널리즘’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 정보에 대한 언론의 영향력은 적지 않다. 박주화 박사는 “국민의 70% 정도가 언론을 통해 북한 관련 정보를 접한다”면서 “언론에 의해 모든 정보들이 국민들에게 흘러 들어간다”고 밝혔다.

따라서 남북이 동질감을 되찾고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언론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김영욱 교수는 한국의 언론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 ▲예민성 ▲전문성 등 3가지를 강조했다.

이날 김 교수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 언론의 역할을 중심으로 ‘남북 평화시대를 위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남과 북의 실제 모습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한의 우월성으로 북한 주민들을 설득하려는 전쟁 저널리즘 태도로는 남과 북의 주민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힘들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서독 언론은 동독의 정확한 실상과 함께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를 사실 그대로 보도했다. 또 동독 주민들도 시청자로 인식해, 서독 시청자들에게 관심 없는 주제라도 동독 주민들이 알아야 할 사안이 있으면 보도 아이템으로 선택하기도 했다.

‘예민성’은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 상황에서는 정서적 문제 등 작은 불씨 하나로 쉽게 악화될 수 있다. 한때 서독 언론은 서독의 기준과 인식에 바탕을 둔 동독 관련 보도로 동독 주민들에게 상처를 안겨 주기도 했다. 또 이 같은 보도로 인해 동독인들은 서독 언론이 동독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거나, 동독인들을 낮게 본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의 폐쇄성과 남북문제가 가진 실제적 중요성 등을 고려할 때, 북한 관련 전문기자는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과 북이 분열적 상황에 놓인 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분열적 상황은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는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문화·역사적 측면에서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갖는 상황을 말한다.

■ 소극적 평화 저널리즘

김 교수는 “소극적 평화 저널리즘이 결과적으로 독일 통일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만약 서독 언론이 대결에 초점을 맞춘 전쟁 저널리즘을 추구했다면 독일 통일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을 겪었을 수도 있다.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해 동서독 주민들 사이의 이질감과 거리감이 훨씬 더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극적 평화 저널리즘은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하며 적극적으로 해법을 제시하는 적극적 평화 저널리즘과 달리, 실상에 대해 정확하고 객관적 보도를 위해 노력하고, 일반 주민, 시민운동가 등 비엘리트들의 삶과 활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

동독 주민들은 1989년 당시 서독 언론이 방송한 대량 탈출과 반정부 시위가 서독의 실상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서독 언론에 대해 익숙함과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서독 사회는 미지의 세계나 상상의 세계가 아니었다. 동독과 서독 주민들은 비록 다른 체제에 살고 있었지만 동독의 대다수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인식했다.

지난 25년 동안 북한 문제를 취재해온 이영종 기자는 “우리 사회에서 전쟁 저널리즘과 평화 저널리즘이 복합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여러 관점에 따라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우리에게 북한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화해·용서는 남북 주민들의 마음속에서부터

소극적 평화 저널리즘이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남과 북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남과 북 주민들의 마음속에 화해와 용서가 이뤄져야 한다.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남북관계에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80%에 달했다. 또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응답에 비해 북한 정권을 존중할 수 있다는 응답이 매우 낮은데, 이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식이 강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를 박주화 박사는 ‘고질화된 분쟁의 상태’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오랜 분단 상황에서 남북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상호 의존적인 상태에서 화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해의 핵심은 나를 바꾸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북한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윤여상 소장은 “그동안 회담의 성과로서 남북 교류와 협력에 대한 논의만 이뤄졌다”면서 “실제적으로 남과 북의 주민들이 화해하고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자세가 돼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언론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