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중독 / 김태실

김태실(클라라) 시인·수필가
입력일 2018-07-17 수정일 2018-07-18 발행일 2018-07-22 제 310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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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나 서나 가물거리는 것, 눈을 감아도 보이는 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폐부 깊숙이, 아니 정신 깊숙이 사로잡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때론 한없는 나락에 빠져들게 하는 그것은 생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죽는 날까지 그 속에서 살다 죽고 싶은 욕망을 품게 한다. 희열이고 보람이며 흡족한 기쁨이 되기도 하는 그것에 웃고 우는 사람들, 우연히 찾아오는 그것은 종류에 따라 증상도 다르다. 중독, 단 한 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지침이다.

둘째 오빠는 머리가 비상했다. 평범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아닌 남다르고 특별한 언행을 했다. 학생 때 우연히 알게 된 바둑에 재미를 붙여 빠져들기 시작한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내내 기원에서 살았다. 주로 내기바둑을 두곤 했는데 어느 날은 기분 좋게 풍성하고 어느 날은 좌절하며 괴로워했다. 냇가에서 노는 아이가 점점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마작(麻雀), 경마에 손을 댔고 도박 중독은 그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가족과 친척의 걱정은 물 위에 뜬 기름일 뿐이었다. 황홀한 유혹에 사로잡혀 일확천금을 노린 굴곡진 삶, 그 끝은 파멸이었다.

2인 1조로 봉사를 다니던 때 알코올 병동에 가게 되었다. 강사가 강연하기 전 유인물을 나눠주고 뒤에서 커피를 타주면서 마주친 환자들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을 볼 때 꽤 많은 여성이 알코올에 중독돼 치료받고 있었다. 어쩌다 병원에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규칙적인 공동생활을 하면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퇴원해서 잘 생활하다가도 습관이 된 중독을 벗어나지 못하고 2차, 3차 입원을 거치며 고통 속에 방황하는 모습도 보았다. 삶의 중심에 무엇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경험이었다.

우연히 만난 문학은 나를 잠식해 들어왔다. 처음엔 마음의 일부분이더니 갈수록 세를 불렸다. 시간이 지나자 문학의 품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어느 날 텅 비어버린 가슴에 들어찬 문학, 눈물과 괴로움은 문학을 통해 위로받았고 평안도 얻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려 넣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을 생각하며 자나 깨나 문학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 편의 글이 형태를 갖출 때마다 찾아오는 달콤함, 그것은 중독이다. 괴로움은 선물을 낳았고 슬픔은 풍요를 낳았다. 넉넉하고 행복한 중독이다.

중독은 종류에 따라 결과도 다르다. 메마른 삶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행복을 안겨 주기도 하고,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황폐함을 남겨 주기도 한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유의지로 어떤 길을 향해 가야 할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 생의 끝에 안겨지는 결과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갚음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중독이라는 이름에 흡수돼 흐르고 있다. 색깔과 맛과 향기가 다른 얼굴, 얼마만큼의 깊이로 젖어들고 있을까. 하루 지나면 하루만큼, 이틀 지나면 이틀만큼 블랙홀에 빠져들게 하는 중독의 얼굴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달콤하게 손짓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태실(클라라)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