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31) 네 발로 걸어라

박그림 (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8-07-10 수정일 2018-07-10 발행일 2018-07-15 제 310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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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들어 드문드문 야생동물의 흔적이 보이는 길을 따라 오른다. 풀들이 쓰러져 있고 어쩌다 발자국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숲이 우거지면 흔적을 찾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야생동물이 오르내렸을 길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어렴풋이 길이 보인다. 야생동물이 지나갔을 길을 가늠해보고 발길을 옮기면서 눈은 바쁘게 흔적을 찾아 움직인다. 발자국은 가파른 비탈을 비스듬히 타고 오르며 이어지고 발자국 속에 담긴 야생동물의 삶이 궁금해지면 야생동물의 눈높이에 맞추어 몸을 낮추고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야생동물의 삶에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발로 걸을 때는 키 작은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이 네 발로 걸으면 뚜렷이 드러나고 발길에 채이며 쓰러지던 수풀 밑으로 보이지 않던 야생동물의 길이 이어진다. 야생동물의 길은 낮은 곳에 있으며 그 길을 따라가면 야생동물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무들은 더욱 높게 보이고 작은 바위도 납작 엎드려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큼 크게 앞을 가로막는다. 코끝은 땅에 닿을 만큼 낮아져 땅에서 스며 나오는 짙은 냄새를 빨아들이고 귀는 더욱 크게 열려 풀잎을 스치는 작은 소리를 담아낸다. 냄새와 소리 속에 담긴 뜻을 헤아려 무슨 냄새와 소리인지를 가늠해 보려 애쓰게 된다.

냄새와 소리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야생동물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냄새와 소리 속에서 먹이를 찾고, 가족을 찾고, 짝을 찾았을 몸짓들이 떠오른다. 납작 엎드려 웅크리고 눈을 감으면 나도 한 마리 야생동물이 돼 그들의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네 발로 걷는다는 것은 야생동물의 눈높이로 나를 맞추는 일이며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야생동물의 마음을 읽는 일이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야생동물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아픔도, 슬픔도, 사랑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를 지키는 일이며 이 세상은 우리들만이 누리고 사는 곳이 아니라 뭇 생명이 더불어 누리고 살아가야 하는 땅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야생동물과 더불어 살아가려 애쓰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삶을 위한 일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 삶에 커다란 위로를 주는 반려동물조차 마구 버려지는 아픈 현실은 야생동물과 다르게 두 발로 서서 걷게 되면서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지만 대신 수많은 야생의 동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애써 그들의 존재를 찾을 일이며 자주 네 발로 걸어라!

박그림 (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