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그 해 여름 / 김오민

김오민(데레사) 시인·드라마 작가
입력일 2018-07-10 수정일 2018-07-11 발행일 2018-07-15 제 3103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또 여름이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봄이나 가을은 기다려도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세상이 점점 달구어지면서 방학을 기다리는 학생들이나 여름을 성수기로 사업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사실상 이제 여름은 무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반갑지 않은 계절이 돼버리고 말았다.

사실 나는 사계절 중 겨울, 그것도 초겨울을 좋아하고 기다려왔다. 코끝이 약간 시린, 기분 좋게 쌀쌀한 날씨 하며 거리를 뒹구는 낙엽들, 이제는 사라졌지만 거리 노점에서의 풋밤 익어가는 냄새 등등.

지난해 여름, 내가 속해있는 ‘역사탐방 모임’에서 서울 주변의 숨어있는 사적지·유적지를 찾아다니던 중 인천시 강화군의 이곳저곳, 철종 임금님이 그야말로 강화도령으로 지게를 지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던 장소, 연산군이 용상에서 밀려나 위리안치(圍籬安置)됐던, 이제는 가시덤불과 풀숲뿐인, 어디가 어딘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폐허가 된 빈터들을 돌아보게 됐다. 연산군의 폭정의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씁쓸하면서 그저 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이 고여 오기도 했다.

그러다 아직도 1960년대의 서울 변두리와 흡사한 장소에 이르러 길섶에 피어있는 채송화를 발견하고는 “아!”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라는 동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행하던 내 또래 여자들이 하나, 둘 따라 불렀다. 잠깐 동안 유년 시절로 돌아가는 표정과 모습들로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시작으로 “봉숭아, 봉숭아 빨간 봉숭아 수줍은 우리 누나 얼굴처럼”, “보슬비에 얼굴이 간지럽다고, 우리 집 앞뜰에 다알리아 고개 숙였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로 이어지며 강화의 어느 동네를 우리 일행이 노래하며 휘젓고 돌아다니는 진풍경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덥고 습해 짜증스러운 날씨와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이 점점 상기되면서 기분도 고조되기 시작했다.

골목길에 나 앉아 부채질하던 아주머니들도 우리들을 구경하면서 표정이 점점 환해지는 것이 같은 마음, 같은 기분으로 동화돼 가는 것 같았다.

“그래. 여름은 꽃들의 계절이었어.” 이제 앞마당에 이런저런 꽃들을 심어 가꾸고 즐기기는 어려운 여건이 됐지만,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수입 화초들로 장식되는 세상이 됐지만, 우리 꽃이 더 예쁘고 서정적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어느 식물 학자가 “이름 모를 꽃은 있어도, 이름 없는 꽃은 없다”고 한 말씀도 문득 떠오르면서 꽃 이름을 알거나 모르거나 모든 꽃의 색깔과 자태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 초복이 며칠 안 남았다. 초복 전날 저녁 조카손녀들에게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30년 전쯤 내가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었던 그 조카딸이 이제 결혼해 그때 제 나이쯤의 딸이 둘이나 됐다. ‘아주아주 나중에 그 조카손녀들이 내 나이 무렵쯤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던 기억을 되살리며 잠깐이라도 옛 추억이 되살아나겠지.’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 꽃들이 갑자기 더 정겨워지면서 세상도 정겹게 다가왔던 지난 어느 여름날이었다.

김오민(데레사) 시인·드라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