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이종덕(가브리엘) 라자로돕기회 회장

정리·사진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8-07-03 수정일 2018-07-04 발행일 2018-07-08 제 3102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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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도우면서 오히려 그분들 기도에 큰 힘 얻어”
공연예술 전문 경영인 맡아 예술가 활동 지원에 힘 쏟아 
성라자로마을 돕기에 헌신
자선음악회 ‘그대있음에’ 열어 한센인 치료와 사회복귀 지원

이종덕 라자로돕기회 회장은 “세상에서 소외된 한센인을 만나고 그들을 도우면서 비로소 인생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최정상 음악가들의 연주가 펼쳐졌다. 국내외 무의탁 한센병 병력자들의 치료와 사회복귀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기 위해 1975년부터 꾸준히 열고 있는 자선음악회 ‘그대있음에’였다. ‘그대있음에’는 한국교회 문화예술공연의 격을 한층 높인 음악회로 평가받고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 빛나는 무대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대표적인 이가 바로 ‘라자로돕기회’ 이종덕(가브리엘) 회장이다. 이 회장은 대한민국 최고 문화행정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83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울 충무아트홀 사장,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등으로도 활동하는 ‘현역’이다. 가톨릭성가 ‘주여 당신 종이 여기’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가 교회 안팎에서 펼친 문화예술행정가로서의 삶을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들어봤다.

대담 : 장병일 편집국장

날짜 : 2018년 6월 28일

장소 : 서울 충무아트홀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1963년 문화공보부 공무원으로 문화예술계와 인연을 맺으셨으니 벌써 55년의 세월이네요. 국민들이 문화행정에 별 관심이 없을 때부터 법령을 일일이 만들어가면서 활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종덕 회장(이하 이 회장) : 1961년 공직에 발을 내디뎠고 1963년 문화공보부 문화과 공연 예술 실무와 문화예술정책 연구관으로 예술계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장 힘을 기울였던 부분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 귀빈들이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알게 하는 공연을 기획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정식이 아닌 이른바 ‘갈라무대’에 서게 한다고 항의하던 예술인들도 차츰 저의 뜻에 공감하면서 문화예술을 통한 외교사절로서의 역할에 적극 동참하게 됐습니다.

-장 국장 : 회장님의 경력을 듣는 이들은 누구든 혀를 내두르곤 합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시작해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충무아트홀 등 국내 주요 문화예술기관장을 역임하시면서, 예술경영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부터 예술인을 위한 대중문화의 초석을 다져오셨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회장님의 성함 앞에는 ‘문화예술행정의 마에스트로’, ‘공연장 전문 경영인 제1호’ 등 다채로운 수식어들이 붙곤 합니다. 회장님께서 회고해주시는 지난 세월 또한 한국 문화예술 역사의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회장 : 문화공무원이나 공연예술 경영자들은 무대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1980년대 대학로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한국문예회관연합회를 창립해 전국 공연장을 민영화하는데 힘쓴 것도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수도인 서울과 각 지방의 문화예술 인프라 격차가 심한데요. 저는 우선 서울과 지방 간 교류를 통해 각 지방의 문화를 살리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문화올림픽이라고 부르는 제주세계델픽대회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한 건 의미가 컸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공립예술단체로서 대한민국 창작공연의 산실 역할을 하는 서울예술단을 예술의전당 산하로 이끌어 들인 것도 뜻깊은 성과였습니다.

-장 국장 : 문화공무원, 예술행정가가 할 몫은 예술인들이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동안 펼쳐온 문화행정의 철학을 밝혀주신다면.

▲이 회장 : 인간 삶에서 예술이란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에는 신비로움이 있지요. 예술가들의 활동을 돕고 문화예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뒷받침한 삶에 후회는 없습니다. 곳곳에서 공연 예술가들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창작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후원회도 발족했는데요. 문화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데에는 재정적 지원을 아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2004년에 펴낸 자서전의 제목도 「내 삶은 무대 뒤에서 이루어졌다」로 정했지요.

이종덕 라자로돕기회 회장(왼쪽)이 6월 28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가톨릭신문 장병일 편집국장과 만나 문화예술과 신앙의 접목에 대한 노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 국장 : 회장님께선 교회 내 문화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1989년부터 2008년까지 ‘라자로돕기회’ 운영위원장, 2008~2011년엔 회장을 지내면서 자선음악회 ‘그대있음에’를 기획하셨는데요. 또한 지난해부터 다시 제11대 ‘라자로돕기회’ 회장으로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벌써 44년째인가요? 성라자로마을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고 또 어떻게 이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회장 : ‘그대있음에’ 무대를 통해 만들어진 맑고 선한 향기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신앙과 예술 또한 서로 한 줄기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자로돕기회’와 직접 인연은 1974년 고(故) 이경재 신부님께서 하신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습니다. 제 견진 대부를 통해 이 신부님을 소개받았는데요, 신부님의 활동과 영성에 감화된 저는 무슨 일이든 적극 도와드리며 순명하겠다는 마음이었지요. 그러다보니 한센인들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게 됐고요. 저는 소외된 한센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도우면서 비로소 인생을 알게 됐다는 묵상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로부터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한센인들이 우리를 위해 해주는 기도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장 국장 : 한센인들과의 만남, ‘라자로돕기회’의 활동이 회장님의 신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군요.

▲이 회장 : 사실 더 크고 깊이 신앙심을 채우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이경재 신부님의 강론은 신앙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지요. 딸 넷을 낳고 어렵게 얻은 3대 독자를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잃었는데요. 당시 장례미사를 주례하신 이 신부님께서는 제가 많이 원했기에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기르는 기쁨을 알도록 해주시고 다시 데려가신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아들은 하느님 품으로 다시 돌아간 것 뿐이라고요. 처음엔 많이 서운했는데, 곧이어 아홉 살까지라도 아들을 키우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이후 성당에 더욱 열심히 다니고 한센인들을 위한 사업에도 더욱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장 국장 : 그런 뜻을 바탕으로 펼쳐주신 전문적인 활동을 통해 신앙과 문화예술과의 접목이라는 또 하나의 성과를 이루신듯 합니다. 신앙, 종교란 인간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문화’이기도 하지요. 한국교회도 최근 직접 선교만이 아니라 가치 있는 가톨릭 문화를 공공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노력을 하고자 하는데요.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 회장 : 우선 교회도 좀 더 열린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너무 고지식하고 정례화된 모습만이 아니라 문을 열고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 신앙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일부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에 신자 예술인들이 적극 교회에 들어서길 망설이는 경우도 봤습니다.

-장 국장 : 문화예술과 더불어 살아오신 여정, 그 안에서 이 회장님의 가장 큰 삶의 가치가 묻어날 듯합니다. 후학을 양성하실 때에도 전해질듯 하고요.

▲이 회장 : 한 길을 걸으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깁니다. 항상 역지사지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의 경우에도 무대 위에서 발휘할 기량이 없으면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없죠.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제가 활발히 활동할 때는 정치를 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곤 했는데요. 저는 타인의 존경을 받으려면 자신이 정의롭게 자기 삶을 살면서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컸습니다. 탐욕, 정치력 등으로 자신의 ‘이름’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알아주면 자칫 목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는데요. 벼 이삭이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인격이 높을수록 머리를 숙이는 철학, 그것이 제 삶에 있어서 큰 구심점이었습니다.

-장 국장 : 대담을 이어가면서 한 순간도 회장님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현역’, ‘교회 안팎의 문화예술을 증진하는 ‘현역’으로의 활동, 앞으로도 더욱 기대합니다.

정리·사진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