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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보직은 짧고, 인생은 길고

이연세 (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8-07-03 수정일 2018-07-03 발행일 2018-07-08 제 310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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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악당 기억나세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몇 주 전 결혼식장에서 만난 옛 전우 중의 한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1990년대 초 젊은 간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세 명의 고급장교에 대한 뒷담화로 추억을 꺼냈습니다. 더욱이 요즘도 3대 악당 수준은 아니지만 ‘갑질’하는 상급자가 종종 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첫 보직이었던 소대장을 시작으로 군에 복무하는 동안 대대장, 여단장 등 23개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수많은 상하급자들을 만났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나 고유의 정체성과 성격으로 교감했습니다. 때론 의기투합하기도 했지만 의견이 맞지 않아 심한 속앓이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운(運)이 좋았던지 악당이라고 불린 사람들과 근무한 적은 없었지만 상처로 각인된 상급자도 있었습니다.

소위 악당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부대 또는 조직을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주인의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사(公私) 구분 없이 하급자를 운용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며, 시도 때도 없이 지시를 내리곤 합니다. 그리고 권위적이고 강압적으로 부대를 지휘하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합니다. 하급자가 아무리 좋은 의견을 개진해도 묵살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잘못을 계급과 직책으로 덮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저라고 해서 흠이 없었겠습니까. 하급자들과 소통하며 조직을 잘 이끌었던 적도 있었지만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아쉬움이 남았던 때도 많았습니다. 열정이 지나쳐 내 소유의 부대처럼 착각하기도 했고, 공명심이 지나쳐 아집과 편견으로 하급자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왜 그랬을까’ 싶은 것이 후회가 됩니다.

헨리 프레더릭 리피트와 레너드 듀피 와이트는 리더십을 권위적 리더십, 민주적 리더십, 자유방임적 리더십 등 3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어떤 리더십이 장점이 많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적용하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상황과 여건, 조직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공자는 “군자는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고, 가까이서 대해 보면 온화하며, 그의 말을 들어보면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보직 기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고 나면 무(無)로 돌아가게 됩니다. 보직에 있는 동안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과 권한 내에서 조직을 잘 관리하고, 후임자에게 넘겨주면 그것으로 자신의 의무는 다한 것입니다.

“사람이란 한낱 숨결과도 같은 것 그의 날들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시편 14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살이를 비유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 앉아 있는 소중한 내 자리! 모두 하느님께서 잠시 맡겨 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넘치거나 턱없이 모자라지 않게 맡겨진 소임 완수를 위해 묵묵하게 걸어가야겠지요.

이연세 (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