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분단의 트라우마와 평화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rn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7-03 수정일 2018-07-03 발행일 2018-07-08 제 3102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지난주에 ‘타이완민주주의재단’(TFD, Taiwan Foundation for Democracy) 주최 재단 창립 1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타이완을 다녀왔다. 회의에서는 다양한 국가들의 발표자들이 자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회적 갈등과 그것을 극복한 경험 혹은 극복하고자 하는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쉬는 시간에 나눈 타이완 학자들과의 대화였다. 그들은 타이완이 국제적으로 국가로서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이 자신들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타이완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필자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 있지 않는 한 중국이 타이완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재균형 전략이 타이완과 중국의 ‘양안관계’(兩岸關係)에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이완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트라우마는 매우 깊은 것으로 보였다. 여기에서 필자는 북한의 미국에 대한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됐다.

타이완은 중국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과 직접 전쟁을 했던 ‘국공내전’(國共內戰)의 장소가 아니었지만, 북한은 한국전쟁으로 미국 및 UN군과 직접 전쟁을 치른 전장이었으며, 한국전쟁은 국제전의 성격을 갖는 전면전이었다. 한국전쟁의 피해는 중국의 국공내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트라우마는 타이완의 그것에 비해 더욱 크리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압박을 종전 이후 65년 동안 견뎌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이 자부심이 북한 체제 유지의 원동력이 돼 왔다.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의 트라우마나 자부심은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라 보이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남북 관계의 개선이나 북미 관계의 개선을 위한 협상이 보다 용이해질 것이다.

물론 우리 역시 한국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자부심이 진정한 자부심이 되려면 북한의 트라우마와 자부심을 이해하고 다독이면서 우리가 먼저 걸어간 발전의 길로 북한을 이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과 북이 ‘공존’(共存)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돼야 한다.

과거의 남한 관계가 ‘적대적인 군사적 대결’이었다면, 이제 미래의 남북 관계는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협력’으로 전환, 발전돼야 한다. 이 일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려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앞장서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는 평화를 도모하고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을 추구’(로마 14,19)하자는 바오로 사도의 당부에 대해 오늘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이원영 (프란치스코)rn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