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뜻밖의 소식 / 노희철 신부

노희철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8-07-03 수정일 2018-07-03 발행일 2018-07-08 제 310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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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대리구청 생활을 마무리하고 들뜬 마음으로 본당 사목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며 생활하던 어느 날,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바라본 전화기 화면에는 주교님의 성함이 표시돼 있었다. 나는 순간 ‘무슨 일이지? 주교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실 일이 없는데!! 본당으로 갈 신부에게는 전화가 없다고 들었는데….’ 하며 전화를 받았다. “신학교에서 학생들의 영성 지도를 해줬으면 합니다”라는 주교님의 짧고 명료한 말씀이었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이제 앞으로 더 이상 신학교에서 생활할 날은 없겠지’라며 세상을 향한 사목활동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제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신학교로의 복귀(?)’는 당혹스러움과 걱정과 두려움을 자아내게 했다. 학위는 물론이요, 영적인 성숙도에서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신학교로 가야 한다는 현실은 결코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주교님께 충성을 맹세하며 순명의 덕을 살아야 함이 사제의 기본 덕목이라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소명은 너무도 부담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과업으로 인식됐다. 나는 5대 독자이며, 3명의 누이들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성장했기에, 여성 사목에 특화(?)돼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직 남성들만 거주하는 신학생 공동체에서의 사목활동이란 상상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교님께 순명하고, 주교님의 말씀을 하느님 말씀으로 생각하며 따르기로 한 순명의 정신을 생각하며 신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신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체험하게 되었다. 신학생 입장에서는 알 수 없었던 신학교의 감추어진 다양한 모습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무서운 존재로만 느껴졌던 교수신부님들의 신학생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고뇌, 신학교 운영을 위한 많은 신자들의 물질적인 후원과 기도와 격려와 사랑, 1학년부터 7학년인 부제반까지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는 공동체의 소중함 등등을 새롭게 인식했다.

다시 신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새로운 차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신학생 시절 나는 신학교의 모든 것을 명확하게 봤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전체가 아닌 한 조각 파편에 불과했음을 이제야 발견했다.

그러면서 순명의 덕에 대한 가치를 재조명하게 된다. 순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순명을 통해서 나 자신이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체험과 신비와 성장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나를 따르라’(마태 9,9)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명하며 길을 나선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생활을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신비를 체험했듯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는 놀라운 신비를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다음에는 수녀원 지도신부로 가야 하지 않을까!!!”

노희철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