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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화해 일치] 냉전 체제의 우상을 넘어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6-26 수정일 2018-06-26 발행일 2018-07-01 제 310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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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화가 진전되면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일시적 중지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북미 관계 개선으로 인해 한미 동맹이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미 동맹을 통해 미국은 항상 우리를 굳건하게 지켜주었다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일수록 불안한 마음이 큰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그리고 현재의 문재인 정부에 대해 한미 동맹을 흔드는 친북 정권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에서 한미 동맹이 가장 흔들렸던 시기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믿는 박정희 정부 말기였다.

1970년대 중반 베트남에서 미국이 철수하면서 베트남이 베트콩에게 패배했다고 믿었던 박정희 정부는 ‘자주국방’을 선언하면서, 은밀하게 핵개발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당시 미국의 카터 정부는 박정희 정부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시사했다. 19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기는 미국이 중국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국교를 맺었으며, 북한은 비동맹 회의를 통해 제3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던 시기였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한국인 로비스트 박동선에서부터 촉발된 소위 ‘코리아 게이트’(Korea Gate)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됐던 시기였다. 결국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에 의해 사망하면서 한미 동맹은 다시 복원되기 시작했다.

북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때는 북한이 핵개발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김정은 체제에서였다. 중국은 소위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규정한 북중 관계에도 불구하고, UN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전례 없이 강도 높게 이행했으며,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친중파로 알려진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북한의 권력을 장악한 지 7년이나 지난 올해 3월에서야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으며, 북중 관계는 복원되기 시작했다.

결국 국제정치에서 동맹 관계란 강대국이 주도하는 국제정치 질서에 약소국이 순응할 때에는 굳건하지만, 약소국이 독자적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경우에는 위기에 처했다. 국제정치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내부에는 한미 동맹을 우상처럼 섬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미 동맹 그 자체가 목표가 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된다. ‘평화는 강물처럼 넘쳐 흐르게’(이사야 48,18) 하겠다는 말씀이 북미 관계의 변화 속에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지금, 한미 동맹의 성격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우상을 넘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때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