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교구사] 천진암성지 (하)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6-19 수정일 2018-06-19 발행일 2018-06-24 제 310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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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복음화·한반도 통일 기원 
‘천진암100년계획한민족 대성당’ 추진

천진암성지 창립선조묘역.

수원교구는 하느님의종 이벽(요한 세례자)의 묘를 찾은 것에 이어 다른 창립 선조들의 묘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1981년에는 복자 정약종의 묘와 하느님의종 권철신·권일신·이승훈의 묘도 찾아 천진암으로 이장했다. 당시 천진암은 창립 선조들의 묘를 이장하기는 했지만, 아직 성지로서 개발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교구는 1984년 한국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사업을 종료하면서 본격적으로 천진암성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또 1985년에는 지금의 성남대리구 퇴촌본당인 천진암본당을 설립했다. 본당은 성지에 위치하면서 성지개발에 협력해왔다. 지금 성지 입구에 있는 광암성당은 천진암본당이 사용하던 성당이다.

창립선조 묘역에서 내려와 ‘천진암100년계획한민족 대성당’ 예정 부지에 내려왔다. 1만900㎡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는 아직도 돌과 입구를 나타내는 철골 구조만 서 있을 뿐이지만, 1993년부터 서서히 변화해 왔다.

“한국천주교발상지 천진암 새 성전 머릿돌에 교황 강복을 베푸느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온 겨레가 영원히 화목하기를 비노라.”

대성당 터에 자리잡고 있는 머릿돌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서명이 담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1993년 교황이 천진암성지에 보낸 강복이다.

교구는 1993년 교구 설정 30주년을 맞아 천진암성지에서 30주년 신앙대회를 열고, 천진암100년계획한민족 대성당 정초식을 열었다. 바로 교황의 강복을 새긴 대성당의 머릿돌을 축복하는 행사였다.

3만여 명의 신자가 참례한 이날 미사에서 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는 “우리 교구도 전국 교회와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하여 더 나아가 세계 교회의 부흥을 위해 참여하고 기여할 때가 됐다”고 말하고 “천진암대성당은 한국의 남북통일을 기원하시는 교황님의 뜻을 따르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고 천진암대성당 추진 의미를 밝혔다.

대성당 부지 옆으로 보이는 커다란 성모상에도 평화의 의미가 담겼다. 높이 15m, 폭 6m, 무게 25t 규모로 제작된 ‘세계평화의 성모상’은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를 형상화한 성모상이다. 이 성모상은 모든 국가와 민족의 신앙의 자유와 평화, 특별히 남북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봉헌된 성모상이다.

하지만 성지가 그동안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성지의 시설부분이 아니다. 처음 성지개발이 시작된 것이 신앙 선조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듯이, 신앙 선조들이 탐구하던 천주공경 신앙을 찾고 그 정신과 업적을 본받는 것이 바로 성지개발이라는 것이 성지의 입장이다. 그래서 성지는 꾸준히 순교자들의 묘를 찾았고, 성 정하상(바오로), 성 유진길(아우구스티노), 복자 정철상(가롤로)의 묘를 조성했다. 또 신앙 선조들의 친필과 유물을 수집해 박물관도 세웠다.

천진암성지위원회는 1980년 ‘천진암 성역화의 의미와 방향’을 설정한 글에서 “(성역화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정신과 업적의 전승’”이라면서 “한국 천주교회 창립의 성업을 이루신 우리 성현들의 진리 탐구정신과 천주 공경 신앙은 오늘의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내일의 후손들에게까지 계승 발전시켜야 할 가장 중요한 성역화의 목적이요, 방법이며, 방향”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