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광야의 소리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18-06-19 수정일 2018-06-19 발행일 2018-06-24 제 3100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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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 낮 미사
제1독서 이사 49,1-6 제2독서 사도 13,22-26  복음 루카 1,57-66.80
지금 나에게도 외치는 요한 세례자의 ‘광야의 소리’
세례 때 서약 새롭게 새겨보며 소명에 충실한 삶을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교회 전례력에 모태에서 태어난 날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예수님, 성모님 그리고 성 요한 세례자 세 분뿐입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성인은 유다사회에서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축일은 동방교회나 서방교회를 불문하고 4세기 중엽부터 기념해왔습니다.

전야 미사부터 성인의 축일을 기리는 독서와 복음 말씀은 요한 세례자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다임금 헤로데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흠 없이 살아가던 연로한 사제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친척으로 아이를 못 낳는 여자 엘리사벳에게 천사가 잉태소식(루카 1,13)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모태에서부터 그를 부르시어 이름을 지어 주시고, 당신의 종으로 거룩한 예언자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요한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의 기쁜 소식에도 아기의 아버지인 즈카르야는 두려움에 떨며 귀를 의심한 나머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 고통을 안고 깊은 침묵 속에 하느님을 만난 뒤 아기의 할례 때 천사가 일러준 요한이란 이름을 서판에 쓴 후 비로소 혀가 풀렸습니다.(루카 1,64)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구원의 메시아가 오시기에 앞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인 요한이 주님의 백성을 깨우쳐주리라고 예언합니다. 이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67-79)는 매일 아침 시간의 전례(성무일도)때 바치는 기도입니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즈카르야가 그의 아들의 이름을 쓰다’.

한 시인은 ‘꽃’이란 시(詩)에서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습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밝힙니다. 천사가 일러준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은총(선물)’이란 뜻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큰 인물임을 예고(이사 49,3)합니다. 그를 ‘세례자’라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도 세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인연을 맺고자 세례에 앞서 교리교육을 받던 때가 회상됩니다. 제가 수호(주보) 성인을 모셔야 하는데 당시 성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친척 중에 한 분이 “가장 훌륭한 성인은 요한 세례자”라고 일러주어 제 본명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제겐 천사였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성 요한의 탄생축일(6.24)과 수난 기념일(8.29)을 지내고, 대림시기에 그가 선포하는 ‘광야의 소리’를 들으며 성인에 대해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때부터는 그분의 삶을 본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제게 ‘요한이 누구요?’라고 물으면 그는 ‘광야의 소리’요, ‘그리스도의 선구자’이며, ‘겸손한 종’이라고 대답합니다.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광야에서 극기의 수덕생활을 했던 요한 세례자는 하느님의 소명을 받아 약 이천년 전 “회개 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마음의 회개를 통해 주님의 길을 곧게 만드는 유다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습니다.(마태 3,2; 루카 3,3)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시기 전에 요한이 온 백성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영미의 고고학자들이 요한 세례자가 세례를 베풀던 장소로 추정되는 수바(Suba)동굴(넓이 3.5m, 길이 24m)을 찾아냈다는 뉴스(2004년 8월 16일)를 듣고 「요한 세례자의 동굴」(The Cave of John the Baptist)이란 보고서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동굴은 요한의 출생지인 예루살렘 서쪽 외곽 아인 카림(Ain Karim)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요한 세례자의 삶을 본 유다백성들은 그가 당시 유다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언자인 엘리야거나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일지 모른다고 두려워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당신은 누구요?” 하고 그의 정체성을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19)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애제자 요한 사도는 “그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으로 빛을 증언하러 왔고 그 증언을 통해 모든 사람이 참빛을 받아들이고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전합니다.(요한 1,7) 요한은 당시 탐욕적인 사회상을 고발하면서 메시아의 오심에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성인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헤로데 임금의 비윤리적인 생활까지도 두려움 없이 비판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했고 순교의 영광을 안은 채 생을 마감합니다.

요한 세례자에 대한 증언은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 3,1; 마르 1,2; 루카 3,1; 요한 1,19 이하)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분이 그리스도이시고, 물로 세례를 주는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으며,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겸손이 몸에 밴 분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말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대로 요한은 ‘광야의 소리’지만 주님은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한 말씀’입니다.

누가 ‘당신은 누구요?’ 하고 정체성을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신앙인’이라고 고백해보면 어떨까요? 오늘 요한이 외치는 ‘광야의 소리’를 들으며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죄와 악습을 끊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길인 그리스도를 믿는 세례 때의 서약을 새롭게 하여 자신의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하신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성월에 우리 마음이 성심과 하나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의 정신으로 산 요한 세례자의 겸손을 본받아 그리스도와 진실한 우정을 나누고, 기쁜 얼굴로 모든 일에 감사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삶이 우리 이웃에게 감동을 주고 주님을 증언하는 길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