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의로움, 완성의 의미 / 서영준 신부

서영준 신부(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
입력일 2018-06-19 수정일 2018-06-20 발행일 2018-06-24 제 310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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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어느 점심시간, 가톨릭 학생회 아이들에게 과일음료를 사주기 위해 미리 주문한 음료를 받으러 잠시 학교 앞에 나갔다 온 적이 있다. 그렇게 주문한 음료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 멀리서 보이는 학생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학생이 우리 반 학생이었다.

학생들이 학교 밖을 나갈 경우 자기가 속한 반 담임선생님에게 외출증을 받고 나가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학생에게 외출증을 끊어준 적이 없다. 몰래 학교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인지하는 순간 또 다시 내 마음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기며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화를 내야 되는 걸까? 조용히 타이르는 것이 좋을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결국 화를 내기 보다는 다시 원칙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와 다시는 오늘과 같은 일이 없길 바란다는 다짐을 받아내며 다시 학교로 돌려보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대목이 성경에 있다.

그들의 의로움을 넘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지 생각해 본다. 학생들과 있다 보니 규칙 등을 지키지 않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문제는 그럴 때마다 드는 좋지 않은 감정과 시선들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규칙을 어긴 학생들을 하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그런 나의 상태 그대로에 머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 안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 주게 하셨다.”(루카 4,18 참조)

그저 원리원칙의 의미 속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 등에 머무르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 순간순간 그분 지혜의 영을 청할 수 있어야하겠다.

원리원칙과 나의 그릇된 감정을 넘어 보다 완전하고 올바른 의미 속에 머물고 그러한 머무름 속에서 다른 대상들을 향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단정 짓지 않고 한정 짓지 않는 의미 안에서 더더욱 올바름을 찾고 향하고자 하는 내가 되자. 그런 내가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로움 속에 머물러 마침내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그분 안에 머무를 수 있는 내가 되는 길일 것이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서영준 신부(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