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40) 나의 첫 요리, 김치찌개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6-19 수정일 2018-06-19 발행일 2018-06-24 제 310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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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거의 30여 년을 함께 수도 생활을 했던 후배 신부님이 있습니다. 온순하고 착한 천성에 따스한 미소를 가진 그 신부님은 ‘박학단식(?)’한 분입니다. 어떤 분야든지 물어보면 모르는 것이 없는,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물어보면 갑자기 다른 일이 있어서 자리를 뜨는 분입니다. 어느 날 그 신부님이랑 식사를 하는데 내가 물었습니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이 그저 다 부러워.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고.”

“에이, 형, 그렇지 않아. 못하는 거, 맞다, 나는 요리를 잘 못하잖아. 그 옛날, 우리 신학원에서 함께 살 때 내가 식사 당번을 하면 형이 늘 요리 못한다고 구박했잖아.” “내가, 정말? 그리고 우와, 30년 전 일을 아직도 기억해?”

“헤헤, 그건 아니고! 형, 나는 신학원에서 처음으로 주방 당번을 하던 그날을 잊지를 못해.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 그때 내가 처음으로 만든 음식이 뭔지 알아? 바로 김치찌개였어.”

“니가 수도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만든 요리가 김치찌개였다고? 어쩐지. 그래서 지금도 김치찌개를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그날 무슨 일이 있었어?”

“처음으로 주방 당번을 맡던 날! 수도원 기상 음악이 울리자 형제들은 성당으로 가고, 나는 주방으로 갔잖아. 사실 그날 나는 수도원 기상 음악이 울리기도 전에 긴장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조리법을 가지고 이미 식당에 가 있었지. 쌀을 씻어 밥을 한 후, 김치찌개를 정성을 다해 만들었어. 그리고 미사 후에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데, 김치찌개를 먹는 형제들의 반응이 별로인거야. 특히 형의 구박이 제일 심했지. 좋은 재료 가지고 이렇게 음식 만들기도 어렵겠다는 둥, 수도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되니까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는 둥!”

“에이, 설마! 그리고 다 지난 일인데….”

“암튼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내 자신에게 실망을 했어. 처음으로 주방 당번을 하던 날, 형제들로부터 정말 맛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아무튼 그날 저녁에 무슨 일이 있어서 공식적으로 모두 외식을 했고, 그다음 날이 된 거지. 그날도 새벽에 일찍 주방에 갔는데, 전날 해 놓은 맛없는 김치찌개 한 냄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한숨만 내쉬었지. 그래도 뭐, 할 수 없잖아. 김치찌개를 버릴 수는 없고. 그래서 다시 한 번 김치찌개를 푹- 끓여서 아침 식탁에 내놓았어. 그런데 형제들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고 있으며, 이 김치찌개를 먹은 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표정인거야. 그날 아침, 온갖 감언이설이 담긴 칭찬을 들었고 김치찌개 냄비는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다 비워졌지!”

“정말, 우리 그런 일이 있었어? 재밌네.”

“그런데 형, 알고 보니 김치찌개는 짜거나 싱겁지 않으면서, 김치찌개 특유의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오도록 하는 것이 비법이잖아.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남은 김치찌개를 다시 한 번 푹– 끓인 것 뿐인데, 그때 김치찌개의 맛이 우러난 거 있지!”

우리 삶도 김치찌개 같습니다. 지금 자신을 너무 옥죄며 살고 있으면, 졸아든 냄비에 물을 좀 더 넣어 끓이듯, 자신의 삶에 겸손과 온유의 마음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좋고, 허허허! 저것도 좋아, 헤헤헤!’ 하는 결정 장애의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좀 더 끓이면 국물이 우러나듯, 하느님 사랑 안에서 좀 더 진지한 열정을 가지고 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 하느님 입맛에 맞는 김치찌개가 되어 천상의 잔칫상에 놓여질 수만 있다면, 그리고 하느님이 내 삶을 맛보시고 ‘참 좋구나!’ 하신다면, 이건 참으로 아름다운 소망입니다. 참고로 저는 그 신부에게 음식 못한다고 구박 한 적이 한 번도 없음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