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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로힝야 난민캠프’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캠프를 가다 / 윤경일

윤경일 이사장(한끼의식사기금)rn
입력일 2018-06-11 수정일 2018-06-12 발행일 2018-06-17 제 3099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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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행복’ 그들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말
풀과 나무 거의 없는 황무지에 대나무 엮어 만든 허술한 오두막
우기 시작되면 산사태 위험 심각, 위생 환경 열악해 전염병 우려도
사태 해결 위한 더 많은 관심 필요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천연해변을 갖춘 휴양도시다. 그런데 그림처럼 이어진 이 해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그곳은 미얀마군의 인종말살정책으로 인해 쫓겨난 로힝야 난민들이 머무르는 난민캠프다. 난민문제는 우리와 관계없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구촌 한 곳에서 생긴 문제는 이른바 나비효과로 파급돼 전 세계인의 문제가 된다. 국제구호단체인 사단법인 ‘한끼의식사기금’ 윤경일(아우구스티노) 이사장은 로힝야 난민을 위한 구호사업 평가와 추가 현장답사를 위해 최근 이곳 난민캠프를 방문했다. ‘한끼의식사기금’ 방글라데시 지부인 ‘삼살 방글라데시’ 지부장과 로힝야 난민지원사업 담당자 등이 동행했다. 윤 이사장이 로힝야 난민캠프 현지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왔다.

■ 구릉지에 빼곡히 들어선 난민캠프

2016년 유엔난민기구보고에 의하면, 지구상의 전체 난민 숫자는 6560만 명에 달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난민은 법적으로 안전하게 보호받고 대우받을 권리가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의 삶은 궁핍을 넘어 너무나도 참혹한 상태에 처해 있다. 나라도 없고, 집도 없고, 식량과 식수도 부족하고, 적절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지금 가장 고통받는 난민으로는 시리아국민과 로힝야족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로힝야족 반군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이 핍박받는 동족 보호를 명분으로 미얀마의 라카인 주 경찰초소 30여 곳을 습격하자, 미얀마 정부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 인종 청소하듯 소탕작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수천 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잔인하게 죽음을 당했고,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해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게 됐다.

콕스 바자르 디스트릭트 우키아 우파질러 쿠투팔롱 유니온 캠프 쓰리.(이하 쿠투팔롱 캠프) 이번 방문지의 행정구역 명칭이다. 작년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인 1992년부터 미얀마 정부의 핍박에 견디다 못한 로힝야족이 나프강을 건너와 난민촌을 이루기 시작했다.

난민캠프가 자리한 구릉지대는 작년 8월 이전만 해도 코끼리가 어슬렁거리던 삼림 지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저지대에서부터 높은 언덕에 이르기까지 얼기설기 세운 오두막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간혹 자신들의 땅을 잃어버린 코끼리들이 화가 나 오두막들을 향해 돌진하는 바람에 상당수가 부서지고 어른과 어린아이 등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기도 했다.

난민캠프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사람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면 한동안 감정의 공백 상태에 놓인다. 그러다가 사소한 자극에도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어 그들에게 다가갈 때는 매사가 조심스러웠다. 이방인이 마을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표정했고, 그들에겐 웃음이나 기쁨, 행복 등의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바라본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캠프. 저지대에서부터 높은 언덕에 이르기까지 오두막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 생존 본능만 남은 현실

유엔기구, 국제 NGO, 봉사단체, 자선병원 등 세계 각국에서 들어온 다양한 이름들이 난민캠프 내 텐트와 길거리에 붙어 있다. 눈앞에 식량보급센터가 나타났다. 길게 줄 서 있던 사람들은 배급이 시작되자 서로 먼저 받기 위해 몸싸움을 했다. 이런 모습조차도 처음보다는 많이 안정을 찾은 모습이라고 한다. 난민지원사업 담당자는 난민캠프 초창기 식량배급 현장에서 쌀부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모습,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그들의 표정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전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난민들에게는 생존의 본능대로 움직일 뿐 질서 개념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난민들에게 제공되는 식량은 세계식량계획(WFP)에서 주 2~3회 배급한다. 하지만 반찬은 거의 배급되지 않는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나. 그나마 배급되는 쌀과 렌틸콩, 기름의 양도 턱없이 부족하다.

해가 났다 싶더니 다시 비가 후드득 떨어지면서 길바닥은 질척질척해졌다. 방글라데시 동남부는 강우량이 아주 많은 곳이다. 언제나 큰 비로 지반이 약해지거나 붕괴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난민캠프는 나무와 풀이 거의 없는 황무지로 비가 오면 산사태 우려가 크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조잡한 집들도 언제 맥없이 허물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본격적인 우기가 찾아오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재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것이다. 유엔난민기구 등에서는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는 길은 방글라데시 정부와 국제사회가 협력해 위험지대의 난민들을 상대적으로 안전한 고지대로 이주시키는 것뿐이다.

■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노출

(사)한끼의식사기금은 쿠투팔롱 캠프 내 일정 구역을 할당받아 집을 짓고 우물과 화장실도 만들었다. 이어서 나는 각 집을 방문했다. 집 입구에는 예외 없이 두꺼운 검은 비닐이 처져 있었다. 비가 집으로 들이치지 말라고 그렇게 해 놓았다는데 그로 인해 바람이 통하지 않아 집 안에 들어가자 숨이 턱턱 막히고 등에서 땀이 쫙 흘러내렸다.

나는 난민 여성 라미타 카툰씨에게 물었다.

“잠은 어떤 식으로 자나요?”

“바닥에 얇은 비닐시트를 깔고 자요.”

집안의 바닥은 대부분 진흙으로 돼 있고 일부 자리에 비닐시트가 깔려 있었다.

“비가 내린 후 밤이 되면 비닐시트 아래로 차가운 냉기가 올라옵니다. 어린 아이들은 추위에 웅크리며 제 품속으로 파고 들어요. 껴입을 옷도 없고 덮을 담요 하나 없이 아침 해가 나올 때까지 추위를 버텨야 해요”

카툰씨의 말을 들으면서 당장 옷과 담요부터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비가 오면 땅을 파서 만든 화장실이 넘쳐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할 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 우물과 화장실을 점검했다. 청결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변 무더기가 변기 주변 여러 곳에 쌓여 있었고, 어떤 곳에는 회백색 설사물도 있었다. 벌써 수인성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것일까?

캠프 내 아이들을 위한 위생 환경 또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수돗가에 몸을 씻으러 가는 것조차 힘들다. 몸을 가리고 씻을 안전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또 성폭력을 당할 위험이 있어 공중 화장실에도 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삶이 열악해지면 윤리도덕도 땅바닥에 떨어진다. 이곳 난민캠프에서도 여성에 대한 성폭력 피해가 심각했다.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은 로힝야 난민 소녀들이 인신매매를 당하고 성매매 업소로 넘겨진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미얀마 군인에게 성폭행 당해 임신된 여성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서 또 다른 문제도 야기되고 있다.

물을 받기 위해 우물에 모여 있는 아이들.

임시로 지어진 나무다리를 건너는 난민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멀어

쿠투팔롱 캠프 운영을 총괄하는 방글라데시 정부 책임자 파브씨는 난민캠프에 우선 필요한 것들은 튼튼한 집이라고 말했다. 우기가 시작됐는데 현재 주거지들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음식과 영양제도 필요하고, 깨끗한 식수도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 난민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난민들은 생리대를 너무나 생소하게 바라봤고, 밀크 파우더와 렌틸콩도 먹기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파브씨는 현재 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배고픔보다 난민캠프 자치 운영권이라고도 전했다. 그들은 하나의 민족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줄 때 행복해한다. 하지만 심리치료 등 이들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별 성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난민들은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군인들이 쳐들어와 칼로 몸을 찢고 목을 베고 집에 불을 지르자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망쳤다. 하지만 로힝야 난민들은 자신들의 집은 ‘여기’가 아니라 ‘거기’라고 말한다. 로힝야 난민들은 미얀마 정부가 자신들을 미얀마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해주길 원한다. 하지만 언제 그 소원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1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는 난민 전원을 2년 이내에 미얀마로 돌려보내기로 합의했지만 현재까지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 중으로 수만 명의 로힝야 난민들이 방글라데시로 더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로힝야족 난민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데는 강대국 간의 패권 다툼과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마음으로 난민문제를 바라본다면, 로힝야 난민문제도 자국의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만 흐르지 않고 평화롭게 풀려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후원 문의※

051-731-7741, www.samsal.org (사)한끼의식사기금

윤경일 이사장(한끼의식사기금)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