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선교지에 성전 건립 기금 1억 여원 후원한 시각장애인 한경하씨

박원희 기자
입력일 2018-06-11 수정일 2018-06-12 발행일 2018-06-17 제 3099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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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안마하며 모은 전 재산, 가난한 이들과 나눌 터”
6·25 한국전쟁 때 영양실조로 시력 잃어
아프리카 선교 사제 소식 듣고 기부 결심 
방기대교구 보얄리 삼위일체본당 후원

한경하씨가 6월 7일 오후 들꽃마을 상임이사 이병훈 신부로부터 대구대교구장 명의 감사패를 전달받고 만져보고 있다.

“보이진 않지만 정확히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네요. 성가인가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기쁨이 느껴져 너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경하(가밀로·82·대구 대덕본당)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다. 고령 들꽃마을 원장 이병훈 신부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하 중아공) 현지에서 촬영해 온 영상을 보여주자 아이들 목소리에 한씨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한씨는 6·25 한국전쟁 때 경기도 여주를 떠나 충청도로 피난했다가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앞을 전혀 볼 수가 없던 터라 생계가 막막했다. 한씨는 그 당시 시각장애인들이 점(占)을 치는 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5대째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은터라 도저히 점을 칠 엄두를 낼 수 없었다”며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안마(按摩)였고, 올해 3월 2일을 기점으로 5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대구 대명동에서 ‘성모지압교정원’을 운영하는 한씨는 순교자의 후손이다. 어릴적 고조부모님이 새남터에서 순교하셨다는 이야기를 할머니께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굳건한 신앙을 가족들에게 물려받은 한씨는 어려움이 있을 때면 두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한번은 가족이 살고 있던 집이 은행에 넘어갈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큰딸의 손을 잡고 대구 성모당을 찾아가 밤새 기도했습니다. 기댈 곳이라고는 오직 성모님뿐. 성모님 치맛자락을 잡고,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한씨의 간절한 전구가 하느님께 전해졌는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풀려나갔다. 앞을 못 보는 대신 하느님께서 두 손을 주셨기에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주님께 받은 은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야겠다는 생각에 어려운 형편이지만 주저하지 않고 적은 돈이라도 봉헌했다. 전국 어디든 성당을 짓는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벽돌 한 장이라도 놓고 싶은 마음에 돈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대구대교구 사제들이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더위와 비를 피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세요’ 한씨는 한평생 모은 돈 1억550만 원을 중아공에서 선교하는 김형호 신부에게 전했다.

지난 5월 27일 거행된 중아공 보얄리 삼위일체 본당 새성전에는 한씨의 지향에 따라 30여 평 규모의 파이로트(paillote, 열대지방 초가집)를 설치하고, 4대 성모발현지 성모상 4개를 사방으로 세우고 축복했다. 김형호 신부는 본당 관할 람비(Lambi)공소를 재건축하는데 기금을 사용할 계획이라 밝혔다.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