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9) 나의 낙담 극복기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6-11 수정일 2018-06-12 발행일 2018-06-17 제 309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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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디스크로 입원했을 그 당시 나의 상황은, 해야 할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들을 밀쳐놓고 병원에 입원했기에 내심 짜증과 실망이 뒤섞여있었습니다. 심지어 내 몸을 내가 관리하지 않았으면서도, 병원에 입원한 것조차 은근히 하느님 때문이란 생각마저 했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에 계획했던 일들이 한순간에 틀어지게 되면 누구나 깊은 낙담을 합니다. 특히 우울감을 동반한 낙담은 자신만의 생각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고,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원망하게 만듭니다. 그런 다음 자책으로 시간을 보내며 ‘내가 하는 일은 다 이렇지, 뭐!’ 하면서 소통의 창구인 마음의 문 또한 닫아버립니다.

이처럼 낙담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으니, 병원 생활 내내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인가 잠을 자고 있는데 이런 음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그 순간, 나는 잠자면서도 귀찮은 듯 말했습니다.

“지금 병원에 있잖아요. 다 알고 계시지 않나요?”

“지금 너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꿈인지 생시인지…! 눈을 떠 시간을 보니, 새벽 6시였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김에 씻고 묵주를 잡은 후 병동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마음이 어디 있지’를 되뇌이며. 그렇게 복도를 걷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새벽 시간, 중환자실에서 나와 병실로 옮기는 환자분들, 즉 생과 사의 고개를 한시름 넘긴 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옆, 모든 것을 걸고 그분들을 간호하는 보호자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반쯤 열려진 세면장에는 늙은 엄마의 머리를 빗겨 주는 중년의 딸도 있었습니다. 누워 지내는 남편의 소변을 받아 그 통을 들고 화장실로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도 있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환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병동을 청소하시는 미화원 자매님들은 그저 묵묵히 어제의 아픔이 묻은 쓰레기 등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병동 간호사실에는 밤새도록 근무했던 간호사 분들이 다음 간호사 분들에게 인계할 것들을 준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몇몇 의사 분들은 자신의 환자 차트와 검사 기록 등을 꼼꼼히 읽고 있었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병동 구석구석 누비던 나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염원하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보았습니다. 한순간이라도 더 살고 싶어 했고, 낫고 싶어 하는 환자들과 그들을 살리고 싶은 보호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한 편의 따스한 영상을 본 듯, 아무리 힘들어도 한순간 한순간 힘든 상황을 버텨내고자 이 악물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편안하게 대접만 받으며 살아온 내 자신을 반성하면서, 비록 목 디스크가 있지만 다른 모든 신체 기관들은 건강함에 그것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묵주기도를 마친 후, 병실로 돌아가서 침대 식탁을 올려놓고 제대를 차렸습니다. 그런 다음 멀리 불그스레 밀려오는 새벽 여명을 바라보며 눈물을 찔끔 흘리며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날,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의 마음과 기도가 필요한 분들을 위한 지향을 두고 생명의 주인이시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마련하신 생명의 잔치를 거행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힘든 여건 속에서도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이겨내려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용기 잃지 말라는 마음의 기도를 보태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나 역시 퇴원하는 날까지 웃으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묵상하며 내 삶과 세상을 바라보았더니, 모든 것이 다 사랑 안에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