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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 제5회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을 다녀오다 (상)

일본 교토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06-04 수정일 2018-06-05 발행일 2018-06-10 제 309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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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방식은 달라도 지향점은 “화해와 평화”
국적과 나이, 교파 뛰어넘어 다양성 안에서 평화 위해 기도
강연과 워크숍, 현장 탐방 등 현실 속 화해 영성 찾으려 노력

그리스도인(Christian), 동북아시아(Northeast Asia) 그리고 화해(Reconciliation).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의 제목을 구성하는 단어들은 포럼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적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은 국가와 교파를 초월한 그리스도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동북아시아의 오랜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자리다.

5월 28일~6월 2일 일본 교토에서 제5회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The 5th Annual Christian Forum for Reconciliation in Northeast Asia)이 열렸다. 가톨릭신문은 4·27 판문점 선언과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으로 어느 때보다 평화와 화해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높은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기 위해 이번 포럼에 함께했다.

■ 그리스도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

“화해는 여정입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존재로 이곳에 모였지만 이 만남은 우리가 각자 다른 곳에서 같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platform)이 될 것입니다.”

제5회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이하 ‘화해 포럼’)을 시작하며 의장 크리스 라이스 목사가 건넨 인사는 이 포럼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낯선 자들(Strangers)은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할 수 있는 일, 즉 ‘화해를 이루는 일’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교토 도시샤 대학교와 교토 근교에 위치한 ‘도시샤 대학교 리트리트 센터’에서 진행된 이번 화해 포럼에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미국 등 6개국에서 92명의 참가자들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의 종교적 정체성은 가톨릭,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그리고 재세례파로 다양했다. 그러나 화해 포럼에 모인 모두는 ‘그리스도인’이고 ‘화해의 여정’을 위해 왔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지녔다.

화해 포럼 의장을 맡은 크리스 라이스 목사는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다. 탈핵, 사형제 폐지를 위해 일하는 시민사회 활동가 야나가와 토모키씨는 일본인이고 가톨릭 신자다. 후지와라 아츠요시씨는 일본인이자 개신교 신자이며 신학 교수다. 나성권 신부는 한국인이고 성공회 사제다. 국적과 종교보다 다양한 것은 나이다. 일본 아오야마 대학을 다니는 사사키 미호씨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고 가장 연장자인 세키타 히루 목사는 1927년생으로 아흔한 살이다.

화해 포럼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국적과 나이, 그리고 교파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먹고 자고, 함께 말하고 듣는다. 크리스 라이스 목사는 “우리의 각자 다른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우리를 하나되게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 라이스 목사의 말은 화해 포럼의 근본 정신을 시사한다.

특히 포럼 참가자들은 5월 30일 일본 교토교구 가와라마치주교좌성당을 찾아 “우리는 모두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입니다”라고 말하며 화해와 치유를 위해 기도했다. 참가자들은 이처럼 화해를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걸어가는 것임을 알고, 또 실천하기 위해 더불어 시간을 보냈다.

제5회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 첫날인 5월 28일 교토 ‘코프 인 교토(Coop Inn Kyoto)’ 호텔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 아픈 역사를 건너는 화해의 시도들

포럼을 구성하는 ‘다양성’은 화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일부이기도 하다. 화해 포럼 준비 위원인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는 “서로의 다양성을 마주할 때 우리 안의 깊은 적대감과 두려움, 상처를 드러내고 스스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럼의 여러 강연과 발표들이 동아시아의 아픈 역사를 다뤘다.

많은 참가자들이 ‘가장 가까운 나라에 대한 가장 큰 적개심’의 원인을 우리 안에 뿌리내린 폭력의 기억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아픈 기억들을 넘어 화해로 이르는 비전을 우리가 공유하는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찾았다.

화해 포럼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평화와 화해를 향한 성경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화해는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안에서 화해를 시작하시고 완성하신다(2코린 5,17-21)는 점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 화해 영성을 위한 강연과 토론

화해 포럼은 5박6일 간 ‘새 창조→탄식→희망→영성’이라는 연속적인 주제로 진행됐다. 첫날은 만남을 위한 열림의 장으로 지역 교회의 대표자가 환영 연설을 하는 전통이 있는데 올해는 교토교구장 오츠카 요시나오 주교가 일본의 복음화를 주제로 연설했다.

둘째 날은 우리가 처한 오늘날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닥친 위기와 기회는 무엇인지 국가별 토론과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강연을 통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셋째 날은 고통과 비탄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함께 공감하고 애도하기 위한 여정으로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 고령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복지시설 ‘고향의 집’과 일본 교토교구 가와라마치주교좌성당, 교토 니조성을 순례했다. 넷째 날은 화해와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교 희망의 모습을 모색하는 강연과 워크숍이, 마지막 날에는 일상 안에서 화해의 사명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화해 영성을 찾기 위한 강연과 토론이 이어졌다.

강연과 토론, 워크숍으로 채워진 빽빽한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매일 아침, 저녁마다 있는 예배(worship) 시간이다. 말씀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으로 묵상됐다. 포럼의 모든 강연과 모임은 기도로 시작되고 기도로 끝났다. 속한 교회에 따라 기도의 방식은 다르지만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참가자들은 하나가 됐다. 기도는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는지’ 확인하는 화해 포럼의 구심점이 됐다.

5월 31일 도시샤 대학교 리트리트 센터에서 ‘희망’을 주제로 한 발제 후 의견을 나누고 있는 참가자들.

◆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은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Christian Forum for Reconciliation in Northeast Asia)은 미국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 부설 화해센터(Center for Reconciliation)와 ‘평화의 교회’라 불리는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Mennonite Central Committee)가 공동 주최한다.

처음 포럼을 기획한 것은 듀크대 화해센터다. 우간다 출신의 가톨릭 사제 에마뉘엘 카통골레(Emmanuel Katongole, 노트르담 대학교 평화연구소 소장)와 개신교 목사 크리스 라이스가 2005년 공동 설립한 평화 연구 기관인 화해센터는 동북아시아 평화 문제에 주목해 왔다. 듀크대의 신학 교수들,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연구는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을 통해 동아시아 그리스도인 전체로 확대됐다.

2014년 경기도 가평에서 시작된 포럼은 2015년 나가사키, 2016년 홍콩, 2017년 제주 그리고 이번 교토 포럼으로 이어졌다. 화해 포럼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안에 화해의 방향을 모색하는 여정을 지속하고자 한다. 다음 포럼은 2019년 5월 제주 성이시돌 목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일본 교토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