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8) 나의 낙담 극복기 (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
입력일 2018-06-04 수정일 2018-06-05 발행일 2018-06-10 제 309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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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목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입원하는 날, 속옷이랑 세면도구 몇 가지만 챙긴 채 입원 수속을 담당하는 창구로 갔더니, 12시 즈음에 입원 예정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12시 즈음 입원할 병동으로 갔더니, 간호사실에서 ‘입원 병실 자리가 아직 안 빠져서 기다려 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잠시 앉아서 기다릴 겸 가방을 메고 그 병동 휴게실로 갔더니, 거기에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환자의 친구 분들이 자리에 다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휴게실 모서리 쪽으로 가서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보는 척하며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난 후 자리가 하나 생겨나는 그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인상부터가 고약하게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링거를 꽂은 채 보호자와 휴게실에 들어와 주변을 살피더니 나를 바라보며, ‘자리가 없잖아’ 하며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입니다. 가만 보니, 그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환자 휴게실에서 환자도 아닌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신 모양입니다. 나는 속으로 ‘나도 많이 아픈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도 아픈 환자’라는 사실을 무언으로 말하는 듯 아픈 표정을 억지로 지으며 그 할아버지와 눈싸움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의 보호자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우리의 눈싸움은 그쳤고, 그 할아버지의 버럭 소리에 놀란 다른 환자와 손님들이 그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휴게실에서 나갔습니다.

그렇게 어색하고 적막한 시간이 흐르고, 병동 간호사 분이 나를 찾아와 병실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환자복을 갈아입는데 그 할아버지의 버럭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해, 나는 속으로 ‘아, 드디어 나도 환자복을 입는구나!’라고 안도했습니다. 또한 나를 환자로 대우해 준 간호사분이 참 고마웠습니다. 간단한 입원 절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예쁜 간호사분이 오더니, 링거 주사를 맞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간호사 얼굴을 보니, 간호사인 조카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조카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간호사에게 팔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는 링거 바늘을 잘못 찔렀고, 세 번을 찌르고 나서야 바늘이 제대로 들어갔습니다. 그 간호사가 세 번째 찌를 때는 정말 원수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열흘 정도의 병실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근육 통증을 가라앉히는 주사를 맞았고, 한 시간 후에는 다른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당 검사를 했는데 처음으로 수치가 높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또다시 당 검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달깍하는 기계가 아닌, 파란색의 바늘이 있는 것으로 손마디 끝을 푸-욱하며 깊게 찔러 어찌나 아팠던지, 휴…!

그날 저녁 동창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야, 석진아, 내일 이발하러 가자!”

“내일 안 되는데. 사실 나 목디스크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어. 2번 3번, 3번 4번, 5번 7번에 디스크가 있데.

“아니 웬 목디스크? 그리고 너의 그 짧은 목에 있는 뼈 3개가 디스크라고?”

마음속으로, ‘이그, 이 웬수. 위로의 말은 못할망정 속을 후벼 파네, 파!’

첫날밤, 어렵게 잠이 들었는데 간호사 한 분이 새벽 4시10분 즈음 피검사를 한다며 나를 깨우더니, 30분 뒤에 또 다른 간호사 분이 혈압 검사를 하러 오더니, ‘어머, 일찍 일어나셨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자기들이 자는 사람을 다 깨워놓고 일찍 일어났다니! 으이그…’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당시 입원하는 동안 내가 처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하자 점차 내 삶의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더니, 점차 병실 생활은 낙담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