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통(通)’ 하고 있는가?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rn
입력일 2018-06-04 수정일 2018-06-05 발행일 2018-06-10 제 309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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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초여름, 오락가락하는 장맛비를 바라보며 방금 기지를 이륙한 항공기의 안전비행을 빌었습니다. 한 시간여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순간 불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자, 방금 이륙한 항공기 조종사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영(領)이 막혀 속초로 가지 못하고 00기지에 비상착륙했습니다. 그런데 구름 속, 급조작으로 항공기에 문제가 발생된 것 같습니다”라고.

항공기는 영(嶺)을 넘어가던 중, 예기치 못한 구름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정조종사는 항공기의 자세를 잡으려고 했으나 당황한 나머지 조종간을 거칠게 흔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비행착각 속에 빠졌습니다.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던 부조종사가 조종간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정조종사는 즉시 조종간을 인계했고, 관제기관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인근 비행장에 착륙한 것입니다.

비상착륙 과정의 자초지종을 들으니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아차 했으면 험준한 산악지역에 항공기가 추락하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비구름을 뚫고 빛의 세계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조종사 간 원활한 의사소통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비행 중 조종사 간의 긴밀한 팀웍과 원활한 의사소통은 안전비행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불행하게도 경직된 의사소통 때문에 대형 참사로 이어진 사례도 있습니다. 1997년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이 괌 국제공항에 착륙 도중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조종사를 포함한 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조사 결과, 공항의 계기 착륙 시설 고장과 조종사의 피로, 악천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조종사들 간의 의사소통 부재였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한국인들의 권위적인 의사소통 문화가 괌 추락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종실 내의 분위기는 기장이 책임지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비행기를 조종하고, 다른 사람은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괌 공항에 접근할 때 부기장이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니 선회 후 다시 접근하시죠’라고만 했어도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조종사는 수십, 수백 명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조종실 내에서 믿음을 전제한 자유롭고 허심탄회한 소통은 안전비행의 선결조건입니다. 어떤 조종사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소통으로 넘겼고, 또 다른 조종사들은 불통으로 인해 참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또한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기도를 통한 소통이 아닐까요? 하루에 단 몇 분만이라도 하느님과 통(通)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때, 절망의 끝에서 숨쉬기 어려울 때,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열어 통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