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주말 편지] 나이를 잊은 그대에게 / 전옥주

전옥주(가타리나) 희곡작가
입력일 2018-06-04 수정일 2018-06-05 발행일 2018-06-10 제 309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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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까지도 여든이라는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지 못하나요?

지난해 구정 즈음, 평소 가까이 지내는 두 살 아래 자매와 식사를 하던 중에 “형님 올해 일흔 아홉 되네” 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맞출 때 그대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느냐는 듯 무시해버리고 덤덤하게 식사를 계속했다지요.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새삼 ‘일흔 아홉’을 떠올리는 순간 갑자기 울렁증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했습니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 오물 멀리하며 밝고 발랄하게 살겠다고 다짐에 다짐하며 살아도 나이 안 먹을 장사 없고 세월의 더께를 피할 재주는 없지요.

지날 날 가장 꿈 많던 10대의 그대 눈에 비친 환갑노인, 무척 오래 사신 것 같고 힘겨워 보이는 삶이 측은하여 자신은 젊은 모습 그대로 결혼도 하지 않고 아름답게 살다가 마흔에 하늘나라로 가겠다고 명심했었지요. 그러나 지금 그 마흔에 마흔을 더하고 있군요. 자신이 생각해도 아득한 세월, 참 오래도 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까지도 소녀의 감성으로 소녀의 꿈을 꾸는 치기로 살아가고 있으니 소망과 현실의 괴리에서 많은 혼란을 겪고 있을 것 같군요.

사람은, 아니 세상 모든 생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면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노인은 노인답게, 그 ‘~답게’에 맞춤한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네요.

70대 초반, 아직까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며 천방지축 무리하다가 의사로부터 “마음 같아서는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지요. 건강하게 살려면 나이를 생각해야 합니다”라는 충고에 한동안 ‘나는 70대다. 나는 70대다’며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도 했다면서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푸른 하늘을 보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 나를 위해 또는 누군가를 위해 사고 싶어 하며 가끔은 영화를 보고 맘껏 울고 싶다는 그대, 지금도 사랑할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이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주제파악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노인 티 내지 않으려고 허리 꼿꼿하게 세워 ‘굼뜬 노인 되지 말고 했던 말 또 하지 말자’며 자신을 닦달해보았자 오십 보 백보, 자신만 괴롭힐 뿐 노인이란 배에 승선한 노인임이 분명하니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보세요.

그대가 카메라 앞에 서기 꺼려한 지가 20여 년, 그리고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참으로 밉다’, ‘보기가 싫다’고 생각한 세월이 십여 년, 그것만으로도 그대 자신이 노인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울리지도 않는 소녀 적 환상에서 벗어나 그대의 나이에 걸맞은 모습을 사랑하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푸근하게 포용하면서 사랑을 베푸는 마음 넉넉한 노인으로 존경과 사랑받는 어른으로 살도록 노력해보세요.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냐고요?

근년에 들어 그대는 매일 저녁 주님의 부끄럽지 않는 딸로 살아가게 해 주십사 기도하더군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부족했음을 성찰하며 앞으로의 삶은 온전히 주님께 맡겨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사랑의 길을 따라가노라면 나이를 의식하는 평화로운 삶, 그대가 바라는 노년의 아름다운 삶의 길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대여! 사랑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옥주(가타리나) 희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