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 서영준 신부

서영준 신부 (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
입력일 2018-06-04 수정일 2018-06-05 발행일 2018-06-10 제 309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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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장 많은 행사를 치루는 달이 아마 5월이 아닐까 싶다. 5월 한 달은 정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학교 축제, 체육대회, 또 학교 설립 60주년 맞이 골든벨 촬영, 성모의 밤 행사 등 그 모든 행사가 5월 한 달의 시간 안에서 이뤄졌다. 나름 학생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가운데 정신없는 5월 한 달을 보내면서 나 스스로 바쁘고 정신없다는 이유로 소홀해진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수업 준비’다.

현재 우리 학교에서는 학교 교과 중에 철학 수업이 있고 교양 교과로서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그 수업이 내가 하는 수업인데 한 학년이 열 개의 반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반마다 일 주일에 한 시간 수업을 하기에 총 10시간이라는 다른 교과 선생님에 비해 많지 않은 수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수업은 아직도 큰 부담과 두려움으로 작용한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나에게는 이렇다 할 수업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 그리고 학생들이 중요하게 여겼으면 하는 삶의 가치들을 전달하고자 급하게 수업 준비를 하곤 한다. 그래서 내용적인 측면이나 수업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 많은 부분이 서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업이 나에게 큰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건 내가 과연 신부로서 대부분 비신자인 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어떤 수업을 해야 하는가?”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철학 수업은 시험을 치루지 않고 성적에 반영되지 않기에 부담 없는 수업이다. 그래서 무언가 더 의미 있는 수업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할 때 그 수업은 듣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업일 뿐이고, 그래서 그 시간에 자거나 혹은 다른 교과목을 공부해도 되는 시간으로 여겨도 이상할 것이 없는 수업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대학 진학에 필요한 교과목 중심의 수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또 그래서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과연 나는 어떤 의미의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또한 그 수업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하는 건 무엇보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할애해야 하는 시간인 듯싶다. 5월 한 달을 보내며 바쁘다는 핑계로 수업 준비해야 하는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못했는데,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운동 시간과 내가 만나고 싶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약속 등을 내려놓고 나 아닌 타인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내 마음을 바로 그러한 지향점에 두었더라면 그나마 수업을 더 충실하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을까 라는 반성을 해보게 된다.

“밀알 하나가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참조)는 성경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나에게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 나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아직도 더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 나 아닌 다른 대상을 더욱 위하고 그들을 향할 수 있는 ‘밀알 하나’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서영준 신부 (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