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7) 두 손 꼭 잡고…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5-29 수정일 2018-05-30 발행일 2018-06-03 제 309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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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도원에서 외부 행사가 있었고, 나는 할 일이 좀 있어서 수도원을 지키는 안내실 당번을 맡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도 안내실을 보고 있는데 젊은 남·여가 열려 있는 수도원 마당을 기웃기웃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안내실 창문을 열고 어떻게 오셨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 청년이 “아, 예, 제가 예전에 여기를 몇 번 왔거든요. 혹시 강 신부님 맞으시죠?”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의 얼굴을 보니 낯익은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요한이, 우리 요한이었습니다.

“그래, 너 요한이구나.”

“예, 저 요한이에요. 오늘 이 동네로 놀러 왔다가 지나가는 길에 혹시 강 신부님이 계신다면 인사나 하려고 들어왔는데요, 정말 반가워요, 신부님.”

나는 안내실에서 밖으로 나와 수도원 마당으로 갔습니다. 나보다 키가 훨씬 더 커버린 요한이었습니다.

아차, 요한이가 누구냐고요?

요한이는 10년 전, 고등학생 때 사촌 형제랑 우리 수도회의 성소모임을 꾸준히 나왔던 녀석입니다. 그 후로 일반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가더니 차츰 수도 생활과는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 후에 요한이의 소식은 그 녀석의 엄마를 통해서 가끔은 들었는데, 이렇게 수도원을 찾아올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날 요한이는 눈엣가시(?) 같은 모습을 연출하더군요. 함께 찾아온 여자친구의 손을 계속해서 놓지를 않는 것입니다.

나는 태연하게 여자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여자친구라고 소개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한이의 여자친구에게, ‘요한이가 한때는 사제의 길을 꿈꾸었던 학생이었으며, 성실하고 괜찮은 남자’라고 칭찬과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속은 어찌나 쓰리던지…! 요한이 엄마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젠가는 나와 함께 살날이 오겠지!’ 하며 기다렸는데…. 그런데 녀석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서로의 손을 결코 떼지 못할 정도의 우정을 과시하면서!

“그래, 요한아,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작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편입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공부해 보고 싶어서 학원을 다녀요. 여자친구도 허락해 주었고요.”

나는 속으로 ‘너는 수도원에 들어와야 하는데…. 너는 수도 생활 아니면 하는 일마다 안 될 텐데…’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그 녀석의 눈이 너무나 다정했습니다.

“그래, 요한이는 성실하니까 잘 할 거야.”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격려는 무슨.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그래, 암튼 두 사람 잘 사귀다가 만약에 헤어지면 그때는 우리 요한이, 너 다시 사제의 길을 걷는 것으로 하자.”

요한이랑 여자친구는 나의 제안에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나는 또 말하기를,

“요한아, 너의 인생은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네가 만약에 결혼을 하면 내가 주례를 서 주마. 아니면 나랑 살자꾸나. 괜찮지?”

그렇게 10분 정도 수도원 마당에서 수다를 떤 후, 그 둘을 보내 주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느님의 손을 그렇게 잡고 싶어 하던 요한이는 지금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한순간도 놓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두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누구의 손을 잡고 살든, 지금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과는 행복을 일구며,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를…. 아쉽지만, 온 마음을 다해 축복해 주었습니다.

‘요한아, 언제나 우리 함께 지금의 행복을 잘 가꾸며 살아가자!’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