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6) 실수로 얻은 안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5-21 수정일 2018-05-23 발행일 2018-05-27 제 309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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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는 수사님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차량이 있습니다. 이 차량은 기본적으로 시장 갈 때 또는 다른 지역 수도원에 일이 생겼을 때 담당자들이 이용합니다. 그 밖에 형제들이 공식적인 업무가 생기면 그 차량을 타고 볼 일을 봅니다. 차량 이용 방법은, 차를 사용하는 사람이 본원 안내실에서 ‘차량 사용 기입란’에 ‘몇 월 며칠 누가 사용’이라고 적어 놓으면 됩니다.

나는 평소에 수도원 차량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순간순간 머릿속으로 어떤 주제나 그에 대한 생각이 번뜩일 때 이것들을 곧바로 메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평소에는 수도원 방안에서만 지내고 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흐트러진 마음의 끈을 묶게 해 주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그날, 지방에 있는 어느 본당에 전 신자 분을 위한 특강이 있었고, 처음에는 그곳을 수도원 공용 차량으로 갈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역까지만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면 기차 안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좀 더 일찍 서둘렀고, 특강할 본당을 찾아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순차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버스와 기차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것 등이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 조금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시간을 잘 쓸 수 있어 좋았습니다.

기차 출발 시간이 되어 승차한 후, 기차 안에서 졸기도 하고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기도 하면서 그 본당을 향해 가는데 수도원에 함께 살고 있는 후배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강 신부님, 어디 가셔요?”

“응, ○○본당에 특강하러 가는데.” “거기는 어떻게 가세요?”

“기차 타고 가고 있어.”

“아, 그러시구나. 피곤하고 힘드실 텐데 조심해서 잘 다녀오시고요. 강의, 화이팅입니다.”

“그래, 고마워.”

함께 사는 후배 신부로부터 뜬금없는 격려와 위로의 전화를 받곤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어서 그 본당에 도착해 오전 특강을 한 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 기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서울행 기차를 올라타, 자리에 앉았는데 또 다른 후배 수사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강 신부님, 지금 어디예요?” “응, 지금 ○○본당 특강 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야.”

“공용 차량을 안 타고 가셨어요?”

“기차 안에서 할 일이 좀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왔어.”

“수사님, 많이 힘드시겠다. 조심해서 오시고, 수도원에서 뵈어요.”

그렇게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혼잣말로 ‘허 참, 매일 보는 얼굴인데 무슨 안부 전화를 두 번씩이나 받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강의 때문에 지방을 다녀오는 내게 함께 사는 형제들이 두 번 씩이나 안부 전화를 해 주니,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왔고, 안내실을 지나치려는데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 그리고 안내실 안에 들어가서 ‘차량 사용 기입란’을 보니, 오늘 날짜 칸에 공무 차량을 사용한다며 내 이름 석자, ‘강.석.진’을 크게 써 놓고선 지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수도원 주차장에 차는 있는데, 사용은 내가 한다고 써 놓았으니! 알고 보니 차량 사용이 필요한 형제들이 내게 확인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아… 그랬구나!’ 그래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의 실수 때문에 함께 사는 형제들로부터 두 번이나 안부 전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때로는 순수한 실수가 형제들과 주변 사람들과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계기가 되기도 하네요.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