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나의 길로 돌려놓으시니 / 정길연

정길연(베트라) 소설가
입력일 2018-05-21 수정일 2018-05-21 발행일 2018-05-27 제 309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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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넘게 전업 작가로 살아오고도 소설가라 불리는 것도, 소설을 쓰는 일도 항상 버겁고 막막했다. 숫제 소설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하여, 언젠가 내 모든 교유를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영성 깊은 언니와 작은 공동체를 가꾸리라,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날이 앞당겨지는 듯했다.

2015년,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 어느 주말 저녁이었다. 나는 언니의 전화를 받자마자 입은 옷 그대로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동기간에도 신세 지는 일을 극구 마다하는 언니였다. 멀리 떨어져 사는 내게 SOS를 쳤다는 건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과연 언니의 몸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응급실에서 암 병동으로 병상을 옮겼다.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기는 새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깊어갔다. 내 기도는 단 하나였다. 무조건 언니를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당장 ‘하찮은’ 문학을 버리고 복음을 실천하는 일에 남은 삶을 바치겠다고 되뇌고 또 되뇌었다.

언니 옆에 붙어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낸 지 4개월이 훌쩍 넘어 5개월째에 이르렀다. 언니는 기적이라고 할 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언니의 회복과 함께 내게는 뜻하지 않은 회의가 찾아왔다. 과연 내 기도는 옳았을까, 하는 의문. 내가 가겠노라 약속한 길이란 사실 그토록 달아나고 싶어 했던 문학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닐까, 하는 의심. 게다가 그때쯤 영적인 결벽감이 유난한데다 환자 특유의 날카로움이 더해진 언니를 상대하는 일이 점점 곤혹스러워지고 있었다. 생의 남은 시간을 함께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렬한 두 개성의 결합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차츰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고비를 넘겨 퇴원한 언니는 항암치료를 위해 다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동시에 언니와 나의 오랜 염원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직은 때가 이른가’ 하는 의구에서 출발해, ‘어쩌면 언니의 길과 내 길이 애초부터 달랐던 게 아닐까’ 하는 각성에 도달했다. 그제야 늘 내놓은 자식 취급했던 소설을 단단히 붙잡고 싶은 갈망이 내 안에 고였다. 언제나 기도하는 삶을 살아온 언니 또한 기적적인 회생을 통해 이전보다 더 깊은 영적 사명감으로 무장한 것처럼 보였다. 결국 언니와 나는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기로 묵시적으로 동의했다.

해를 넘겨 2016년 봄, 나는 다시 내 집으로, 온전히 내게로 돌아왔다. 그간 생긴 경제적 공백을 메우는 일도 시급했으나 오직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했다. ‘소설에 집중하자. 그냥 쓰자. 쓰고 또 쓰자. 그러면 조금씩 나은, 조금씩 행복한 소설가가 되어가지 않을까.’ 그렇게 혼자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제1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지라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제가 왜요?”

부끄러움 속에서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수상은, 문학적 성과가 아니라 주어진 길을 깨달은 데 대한 확신의 징표이자 격려의 선물이었음을. 거룩한 소망을 향해 투신한다 할지라도 그 본질이 도피라면 승인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각자에게 주어진 탈렌트대로 꿋꿋이 나아가는 겸허한 자세야말로 하느님의 기쁘신 의중이라는 것을.

이제는 달아날 곳이 없다. 소설을 쓰는 일은, 소설가로 사는 길은, 내가 정한 길이 아니라 정해주신 길이라고 믿는다. 묵묵히 이 길을 가다 보면 나를 돌려세우신 주의 뜻을 알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길연(베트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