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18-05-21 수정일 2018-05-23 발행일 2018-05-27 제 309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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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친교로 사랑의 일치를’
세 위격 지닌 한 분, 존재 자체이신 하느님
삼위일체 신비는 머리가 아닌 ‘삶’으로 체험

헨드릭 반 발렌의 ‘성 삼위일체’.

오늘은 하느님의 축일인 삼위일체(Trinity)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가 이 축일을 맞아 사랑이신 하느님의 자녀요 상속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 행복이기에 주님께 먼저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이 날을 기리면서 성삼위의 하느님은 사랑과 친교와 일치의 근원이심을 알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어 교회가 친교로 사랑의 일치를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삼위일체란 용어는 신·구약 성경에 직접 나오는 말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에는 한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계시와 구원의 역사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예고와 세례(루카 1,35; 3,22), 하느님과 일치(요한 10,30),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실 때(마태 28,19) 성삼위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천주교 핵심 교리의 하나인 삼위일체에 대한 진리는 초기교회 때 이미 신앙 고백, 교리교육, 세례, 기도문에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세기 초에 삼위일체의 신앙을 왜곡시키는 이단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교부들의 줄기찬 논쟁과 신학 연구 및 이를 뒷받침한 공의회(니케아 325년, 콘스탄티노플 381년)의 결실로 삼위일체의 교리가 정립되었습니다. 1334년 요한 22세 교황께서는 교회 전례력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기리도록 제정하셨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 교리시간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해 배운 때를 되돌아봅니다.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란 세 위격(位格, three persons)을 지니신 한 분의 본체(本體, one body)시고, 존재(Being) 자체이신 하느님은 위격 면에서는 성부께서는 창조주시고, 성자는 구세주시며, 성부와 성자께서 발하시는 성령은 하느님(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란 인격체가 이렇게 따로 계시는데 한 분의 하느님이시라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누구이신지를 알아보겠다고 성직자나 수도자를 만나는 기회에 여쭈어 보기도 했는데, 여기 몇 가지 비유를 옮겨봅니다. 삼위일체는 세 변을 가진 하나의 삼각형, 성 요셉과 성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께서 이룬 성가정의 모습, 빛과 열과 광선으로 이루진 태양(불),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일화, 삼위일체의 성화에 대한 해설 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삼위일체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서 삼위일체는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삶을 살 때 체험을 통해 알게 되는 ‘신앙의 신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주일과 대축일 미사 때마다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2코린 13,13)라고 삼위의 이름으로 인사를 나누고, 기도의 시작과 끝에 성호경을 긋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누구를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하느님 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긴 쉽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바른 대답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시어 창조주이신 성부를 계시(마태 11,27)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성부와 한 본체”(요한 1,1; 325년 니케아 신경)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대로 지상에 파견되심으로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났습니다. 성삼위께서는 동등하시고, 영원히 공존하시며, 같은 본체이시므로 동일한 흠숭과 영광을 받아야 하는 하느님이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나의 하느님은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시요,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시다”라고 고백했습니다.(고백록 13권 5)

삼위일체는 인간의 지혜로는 알기 어려운 ‘신비’입니다. 계시된 성삼위의 하느님은 지식이 아닌 믿음의 대상이기에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우리의 ‘신앙고백’이고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삶의 목표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기도와 전례에서 드러납니다. 삼위일체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역사는 삼위의 공동사업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랑의 삶을 살며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법을 실천하라고 명합니다.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은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고, 그분의 규정과 계명을 지켜야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신명 4,39-40)이라고 선포합니다.

제2독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로마 8,14-17)처럼 하느님의 영(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고,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또한 하느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상속자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하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내리시면서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있겠다” 하신 말씀(마태 28,20)에 따라 초기교회 때부터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지금까지 구원의 역사를 이룩하여 왔습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아 하느님의 자녀인 나와 하느님의 관계가 친교를 이루고 있는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사랑의 일치를 이루고 있는지, 주님과 우정 속에 자신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한국 평신도 희년을 지내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신앙을 용기 있게 고백하고, 창조질서의 회복, 생명수호,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관심, 용서와 화해 등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는 평신도의 다짐을 실천하는데 앞장선다면 주님께서도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김창선(요한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