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교구사] 가톨릭복지회관 (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5-21 수정일 2018-05-21 발행일 2018-05-27 제 309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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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지역 근로자 기숙사로 문 열어 가난한 근로 청소년 경제적 지원도

가톨릭복지회관의 전신인 안양근로자회관의 1984년 모습.

수원교구 안양대리구 중앙성당 건너편 가톨릭복지회관(경기 안양시 만안구 장내로 113)은 교구 사회복지의 역사를 한 몸에 담고 있는 교구 사회복지의 중심이다.

회관의 옛 이름은 ‘안양근로자회관’이었다. 1960년대는 안양 지역이 공업지대로 변모하던 때였다. 정부가 이끈 경제시책으로 안양 지역에는 섬유공장, 제지공장 등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다. 많은 공장이 생기자 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근로자들이 살 곳을 찾자 안양 지역의 많은 집들이 남는 방을 하숙이나 자취방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많은 근로자들이 주거지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섬유, 제지 등 경공업이 많았던 만큼 여성 근로자들이 주거지를 찾지 못해 지역사회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었다.

당시 중앙본당 주임이었던 정원진 신부는 지역사회의 문제에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객지에서 저임금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기숙사 시설을 만들자고 교구에 건의했다.

1960년대 말 교구는 갓 설정된 가난한 교구였다.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교구청도 외국의 원조를 받은 기금으로 건설비를 충당했을 정도다. 하지만 당시 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기숙사 시설 신축사업에 나섰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또 그러한 노력을 통해 선교하는 것이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침내 1969년 6월 10일 안양근로자회관이 문을 열었다. 여성근로자들을 위한 기숙사로 마련된 회관은 국제가톨릭형제회(AFI)에서 운영을 맡았다. 회관은 1971년 회관 내에 강당을 만들어 근로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특히 근로자들의 많은 수가 10~20대 청소년·청년층이었던 만큼, 단순히 숙식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낯선 도시에서 의지할 수 있는 가정의 역할을 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리는 청소년 근로자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도 하고 인간적 성숙을 위한 공동체 생활교육과 사회적응에 필요한 교양교육,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노동교실, 신앙 교육 등을 제공했다.

또 안양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노동절 행사를 열어 근로자들에게 노동의 존엄성을 알리기도 하고, 근로여성의 복지향상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76년에는 증축을 통해 남성근로자를 위한 기숙사를 마련, 본격적으로 근로자복지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