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자발적 희생에 대한 기억과 성찰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5-15 수정일 2018-05-15 발행일 2018-05-20 제 309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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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은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첫 번째 공식 행사였던 5월 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며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등의 이름을 불렀다. 이들은 모두 이 땅의 민주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외치면서 스스로 자신을 희생한 청년들이었다.

작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살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자의교서 「이보다 더 큰 사랑」(Maiorem hac dilectionem)을 발표했다. 교황은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자발적으로 자유로이 내놓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결심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관심과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밝히면서, 남을 위해 희생한 의인도 성인으로 추대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시복시성의 요건으로 순교와 영웅적 덕행에 더해 ‘목숨을 내놓는 것’을 추가한 것이다. 이는 사랑의 극한 행위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헌신하다가 죽은 이도 교회가 공적으로 기억하고 공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필자는 대통령이 언급했던 네 명의 청년들 중에서 조성만(요셉)과 사적인 인연이 있다. 당시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졸업 후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던 청년이었다. 군사 정권을 반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주장했던 그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으로 시작해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른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로 끝을 맺는 유서를 남겼다. 사제의 길을 걷는 대신 선택한 죽음이 자신의 신앙적 결단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그가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죽음’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에 대해 꼭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도 흔쾌히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단지 ‘자살’이라는 이유로 폄하하거나, 그를 소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한다. 교황이 자의교서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의 한 몸을 내놓기까지 그가 했던 고뇌와 결단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올해 5월 31일에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관, 유경촌 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집전으로 ‘고 조성만(요셉) 30주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위한 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한반도의 정세가 극적으로 평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이때, 조성만(요셉)이 자신의 한 몸을 내어놓으면서까지 갈구했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이 미사를 통해 깊이 있는 성찰이 이뤄지길 바란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