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더치페이 / 서영준 신부

서영준 신부 (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
입력일 2018-05-15 수정일 2018-05-15 발행일 2018-05-20 제 3095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학교에 와서 새롭게 적응한 문화 가운데 하나가 더치페이다. 각종 회비와 회식비 등 모든 비용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사회적으로 너무도 당연하고 일상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사제 생활 안에서 더치페이는 익숙하지만은 않은 문화다.

예를 들어 동창 신부 모임을 하게 될 때나 다른 지역 다른 본당 신부들에게 놀러 갈 때면 대부분 모임을 주최하는 신부가 그날의 식사비용 등을 지불할 때가 많다. 물론 다른 비용이 많이 발생하거나 볼링 등의 각종 내기의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내가 본당 신부로 사목할 때도 지원금 혹은 후원금을 어떤 단체가 모인 자리에 전달하는 식으로 일정 부분 비용을 지불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존의 생활 방식과 전혀 다른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더치페이 문화가 나에게도 익숙하게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더치페이 문화에 너무 젖어 들지는 말자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한다. 더치페이라고 하는 것이 공평하고 합리적인 의미인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 너무 젖어 들 때 내 것을 좀 더 내어놓고 희생하고자 마음이 줄어들 수 있고 또 가끔은 더치페이 안에서 남들보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치페이를 하게 되는 상황일 때 어느 때는 일부러 내가 계산을 하거나 각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보다 더 지불하기도 한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내가 개인적으로 준비해서 제공할 때도 있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선생님들과 회식을 할 때면 나중에 비용을 청구한다고 하면서 본인이 먼저 계산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결국 비용을 청구하지 않고 본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하겠다며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럴 때 나 또한 더 감사한 마음이 들고 그래서 다음 기회에 나도 무언가를 더 해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더치페이라고 하는 우리들 삶의 자연스러운 문화가 분명 편리하고 합리적이며 서로가 불편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더욱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작은 희생, 헌신, 내어놓음이 분명 그 공동체와 조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끈끈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고 더치페이가 좋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더치페이라고 하는 모습 속에 나도 모르게 싹틀 수 있는 마음, 곧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 희생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자라날 수 있는 부분은 분명 경계해야 할듯 싶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볼 때 희생과 헌신은 분명 불가피한 것이고 그러한 희생과 헌신의 의미가 담긴 사랑의 실천이 곧 우리에게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요 기쁨이며 생명의 의미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 것을 내어놓을 줄 아는 마음,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마음이 늘 내 가슴 속에 자리하고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잘 드러날 수 있으면 좋겠다.

서영준 신부 (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