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잊을 수 없는 이름, 조성만(요셉)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5-08 수정일 2018-05-09 발행일 2018-05-13 제 309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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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의 ‘판문점 선언’으로 우리는 한반도 평화라는 새로운 길의 입구에 섰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까지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만을 놓고 보더라도, 적어도 남북 관계의 거대한 전환은 누구도 쉽사리 막아설 수 없을 것 같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고 있는 바로 지금,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조성만(요셉)이다.

30년 전, 1988년은 학생운동에서 새롭게 통일운동의 열기가 터져 나오면서 시작됐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남북학생회담’이라는 공약이 나오면서 통일운동은 곧 학생운동 전체로 확산됐으며,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학생들의 통일운동은 그해 여름의 서울올림픽을 ‘남북 공동올림픽’으로 개최해 통일을 앞당기자는 요구로 발전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한 노태우 정권은 달아오르는 통일운동의 열기에 당황하게 됐다. 이는 한편으로는 한 해 전 대학생들의 열기로 시작된 6월 항쟁에서 정권의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올림픽을 계기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 포위를 기획했던 ‘북방 정책’과 충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통일운동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시작됐다.

노태우 정권과 대학생들의 치열한 공방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던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에서 당시 서울대 화학과 학생이었던 조성만(요셉)이 ‘양심수 석방’, ‘공동올림픽 쟁취’ 등을 요구하며 할복, 투신했다. 그날은 필자와 더불어 조성만(요셉)이 활동하고 있었던 ‘명동성당청년단체연합회’가 주최하는 5월 광주 항쟁 계승 ‘5월제’ 행사의 일환인, 시내를 한 바퀴 뛰는 단축마라톤 행사가 예정된 날이었다. 조성만(요셉)은 하얀 농민복을 입고, 준비한 유서를 복사하고,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풍물 길놀이까지 동료들과 함께한 후, 혼자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으로 올라갔다. ‘양심수를 가둬놓고 올림픽이 웬말이냐’, ‘공동올림픽 쟁취하여 조국통일 앞당기자’라는 구호가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구호를 외치고 할복, 투신한 그를 ‘명동성당청년단체연합회’ 친구들이 백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그날 저녁, 운명을 달리했다. 5일장을 치르고, 30여만 명의 서울시민이 모였던 영결식을 마친 이후, 그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다.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던 조성만(요셉)이 명동성당에서 외쳤던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자는 것이었다. 올해 30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5월 15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추모식, 5월 19일 광주 망월동 묘역 순례가 있으며, 5월 31일, 30년 만에 처음으로 명동성당에서 ‘고 조성만 30주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위한 미사’가 유경촌 주교의 주례로 예정돼 있다. 한반도 평화라는 길의 입구에 선 올해만큼은 조성만(요셉)도 하늘에서 미소로 함께할 것 같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