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3) 진심이 진심의 문을 열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5-01 수정일 2018-05-02 발행일 2018-05-06 제 3093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내가 아는 분 중엔 말없이 여기저기 미사 반주 봉사를 다니시는 분이 계십니다. 최근 들어 평일엔 손녀딸을 돌보느라 여러 곳을 다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토요일이나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미사 반주 봉사를 다니십니다. 하루는 수도원을 방문하신 자매님이 당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습니다.

“강 신부님, 얼마 전에 놀라운 일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오래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서울 근교에 있는 장애인 재활시설 미사 반주를 다녔어요. 그날도 재활시설 반주 봉사를 가려는데, 아침에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긴 거예요. 그 일을 처리하면 미사 시간에 조금 늦을 것 같아서 봉사를 다음으로 미룰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갑자기 생긴 일이고 무엇보다 그곳에 계신 분들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못 간다는 말을 하진 못했어요. 할 수 없이 일을 서둘러 마치고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재활 시설까지 가기로 했어요.”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자매님 집에서 거기까지…. 택시비가 좀 많이 들었겠어요.”

“뭐 그래도 우리 딸이 조금씩 주는 용돈도 있고, 이럴 때 돈을 쓰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택시를 타고가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역시, 삶을 멋있게 사시네요.” “에이, 신부님도. 아무튼 아침에 일을 끝내고 집 앞에 나갔더니, 때마침 택시 한 대가 서 있는 거예요. 우리 동네가 차 잡기가 어려운 곳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택시를 탄 후 그곳까지 가자고 하니, 택시 기사 분이 좋아하셨어요. 아마도 좀 먼 거리를 가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어서 그랬나 봐요. 그렇게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내가 먼저 그 택시 기사님에게 물었어요. “기사님, 혹시 신앙을 갖고 계신가요?” 그러자 기사 분이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그게, 저…”라고 머뭇거리시는 거예요. 곧이어 “제가 청년 때에는 잠시 성당을 좀 기웃거리기는 했어요. 그런데 세례라고 하나요, 뭐 그런 거 받기 직전에 안 나가게 됐어요. 먹고 사는 것도 그렇고”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혹시 아내 되시는 분은 신앙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성당에 나갔다가 안 나갔다가 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택시 안에서 기사 분과 사는 이야기를 좀 나누었어요.”

“우리 자매님의 부드럽고 상냥한 모습에 택시 기사 분의 마음이 움직이셨겠다. 그렇죠?”

“아녜요.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재활시설 봉사자들을 태우는 셔틀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는데, 그즈음 되어 택시 기사 분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이 직업이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가족들 열심히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자녀들도 잘 커주어서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도저히 택시를 멈춰 내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재활시설 입구까지 한참을 더 가게 됐고, 그분의 이야기를 다 들었어요. 목적지에 도착하자 반갑게도 그 곳에 있는 몇몇 장애인 친구들이 나와서 나를 환영을 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기사 분께 택시비를 드리며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기뻐요. 나의 작은 나눔이 저 친구들에게 행복을 주어서!’라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 분이 택시비를 안 받으시더니, ‘나도 이 순간이 가장 기쁘네요. 좋은 봉사 많이 하세요’ 그리고는 그냥 가 버리시는 거예요. 택시비가 꽤 많이 나왔는데….”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속으로는 ‘정말 택시 기사 분이 택시비를!’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분명한 건, 자매님의 진심어린 모습에 택시 기사 분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아직까지 진심이 진심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세상임은 틀림이 없네요.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