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평화의 선순환과 남북한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4-24 수정일 2018-04-24 발행일 2018-04-29 제 309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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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 역사에서는 민주주의가 진전될 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대학생들과 혁신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통일운동이 일어났다. 또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항복 선언을 한 이듬해, 다시 대학생들의 통일운동이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됐을 때 통일운동은 진압됐다. 4·19 직후의 통일운동은 5·16 군사 쿠데타로 진압됐고, 6월 항쟁 이후의 통일운동은 ‘87년 대선에서 집권한 노태우 정부에 의해 역시 진압됐다. 그런데 민주세력을 자임하는 세력이 집권한 후에는 정권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결과적으로는 무산됐지만 김영삼 정권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 실제로 성사됐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은 과거 정상회담 추진 과정과 그 양상이 다르다. 과거에는 남북한 정권의 비밀 접촉을 통해서 추진됐으며, 국민들에게 정상회담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던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에서 제안했고, 2018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화답했으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이 공식적으로 참석해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고조됐다. 2018년 3월, 남한의 특사단이 방북하고 돌아와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즉 이번의 추진과정은 공개적인 제안과 화답으로 진행됐으며, 이에 대한 높은 국민적 지지가 동력이 됐다. 촛불을 통해 민주주의가 진전한 결과로 탄생한 현 정부가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마치 과거 대학생들이 외쳤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가 남북한 정권 차원에서 책임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남한에서의 민주주의 진전과 한반도 평화의 관계처럼, 북한에게도 한반도 평화 정착은 자신들의 안전 보장 및 경제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게 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국제 제재와 안보 위협을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남한에서 남남 갈등이 완화되고, 색깔론은 효력을 잃어 민주주의가 더욱 진전될 것이다. 이러한 평화의 선순환을 통해 남북, 북미 관계가 평화적 관계로 발전할 때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요한 17,22) 그리스도의 기도가 이 땅에서 이뤄지는 신비를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