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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외손자의 첫 영성체 이야기

장미화(카리타스ㆍ대구대교구 포항 이동본당)
입력일 2018-04-24 수정일 2018-04-24 발행일 2018-04-29 제 309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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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 도현이가 초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이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딸집에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딸인 도현엄마가 도현이의 첫 영성체 교리신청 때문에 주일학교 통신문을 펼쳤고, 첫 영성체를 할 아이들은 성경필사를 해야 등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두 달의 긴 겨울방학 동안에 꼬박 써야 할 분량을 보름 동안 써야 했기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꼭 도현이의 첫 영성체 교리를 해야 한다고 딸에게 신신당부했던 내가, 올해는 포기하고 내년에 시키자고 했다.

“안돼요. 그때는 애들이 꾀가 나서 안 하려고 한대요.”

딸은 한사코 이번에 꼭 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 후 딸에게 공책 3권을 사오게 해서 사위, 딸, 내가 번갈아가며 필사적으로 성경을 써 내려갔다. “도현아, 그래도, 너도 한 바닥은 써야지” 했더니 “싫어요! 팔 아파요. 할머니가 빨리 쓰세요”란다. 냉담 중인 사위마저 자식 위한다고 퇴근 후 부지런히 써서 드디어 완성된 성경필사노트를 들고 성당에 갔다 거절당했단다.

그 후 등록은 시켜줄 테니 이번 달 말까지 제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도현이네 집은 다시 난리가 났다.

이제는 그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도현이는 눈물을 뚝뚝…. 눈물로 얼룩진, 글씨를 알아볼 수도 없는, 그런 첫 번째 노트가 완성되었다.

도현이 아빠도 이제는 방법을 바꿨다. 따로 성경과 노트를 사 와서, 아이 책상 옆에 앉아서 필사를 하며 묵묵히 본을 보였다. 그렇게 도현이의 두 번째 노트가 완성되어갔다. 차츰차츰 글씨도 안정되어 갔고 책상에 제법 오래 앉아있는 습관도 생겼다. 드디어 세 번째 노트까지 완성되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다 썼어요!!!”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당장 뛰어 올라가 도현이를 번쩍 안아주고 싶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도현이가 달라졌다. 건성건성 마지못해 다니던 주일학교 생활도 “와! 창세기! 저 구절은 내가 썼던 구절이야!”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해서 교리를 듣고 있단다. 나는 도현이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빠~알간 자전거를 사주었고, 묵묵히 도현이 옆에서 성경필사를 하며 분위기를 잡아주었던 착한 사위를 위해서 포항에서 제일 큰 대왕문어를 택배로 부쳤다.

오늘도 도현이는 할머니가 사준 빨간 자전거를 타고, 성가대도 하며, 즐겁게 성당에 간다.

매일매일 부활을 맛보게 해주시는 하느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장미화(카리타스ㆍ대구대교구 포항 이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