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32) 즐겁게 노는 어른들처럼…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4-24 수정일 2018-04-24 발행일 2018-04-29 제 3092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어제 저녁, 수도원 식당에서 젊은 형제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귀 기울여 들어보니, ‘예수님 부활 기념 농구 시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형제들은 식사를 일찍 마치고 서둘러 식당 밖을 나갔습니다. 나도 덩달아 빨리 식사를 마친 후 수도원 마당에 나가 봤습니다.

그동안 운동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던 형제들은 미리 마당에 나와 있었습니다. 젊어서 그런지, 이미 반팔 운동복에 반바지를 갈아입고 농구공을 튀기며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봄바람이 아직은 차가운데 말입니다. 운동에 소질이 없는 나는 수도원 마당 한 귀퉁이에 서서 형제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내 형제들은 편을 갈라서 농구 시합을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올해 들어, 형제들이 마당에서 운동하는 건 처음인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마당 주변에 핀 목련도 우리 형제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개나리들은 형제들의 운동 경기를 응원이라도 하는 듯 함께 움직였습니다. 모처럼 수도원 마당에서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 할아버지 수사님들도 당신 방 창문을 열고 우리 쪽을 바라보다가 젊은 형제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기만 하셨습니다.

처음에 20분 정도는 다정다감하게 농구를 하던 형제들은 갑자기 ‘아이스크림 값 내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좀 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역시 이내 곧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방금까지 농구하면서도 그토록 장난을 치고 설렁설렁 폴짝폴짝 뛰던 형제들이, 내기가 되자 펄쩍펄쩍 몸을 날렸고 전후좌우로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1점, 1점 - 농구 골대 안에서 공이 들어갈 때마다 형제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고 상대팀 형제들도 전열을 다졌습니다. 아직 초봄인지라 해는 일찍 지고 수도원 마당에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운동을 하는 형제들의 모습에서는 비장함마저 묻어났습니다. 단순한 내기였건만 형제들은 마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듯 긴장되게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경기는 더 흥미진진하게 진행됐습니다.

‘아…. 적당한 내기가 운동 경기를 더 재밌게 만드는구나!’ 마침내 경기는 1점 차이로 끝났고, 운동 중에 씩-씩 거리던 형제들은 어느새 장난치며 게임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진 팀의 종신서원자 수사님의 지갑에서 ‘파란 배추 잎’이 나왔고, 이긴 팀의 유기서원자 막내는 그 돈을 받자마자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습니다. 이제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수도원 마당에 오직 형제들의 환한 웃음만이 서로를 밝혀 주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도착했고 모든 형제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먹는데, 형제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못해 귀여웠습니다. 나는 속으로 ‘아, 이 귀여운 우리 형제들! 하하하’ 하며 웃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 운동을 했던 형제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아이고, 어깨야. 어깨가 쑤신다, 쑤셔.”

“휴…. 오랜만에 농구를 했더니 무릎이 욱신욱신하네.”

“이거, 30분 정도 뛰었는데, 숨이 다 헐떡거려지네. 에고 숨차.”

가만히 보니, 우리 형제들은 귀엽다는 말을 들을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곧 50살이 될 형제, 그리고 대부분 40대 초·중반, 제일 막내가 30대 후반이었습니다. 이 형제들은 사회에 살았으면, 자식들 장가를 보낼 나이였습니다. 그런 형제들을 보고 귀엽다…. 이런!

하루하루 형제들과 살면서 장난치고, 놀려먹다가, 서로 삐지고, 그러다 풀어지고 악수하고, 또다시 하루를 살고. 이렇게 나이를 잊은 채 살아가는 수도생활이 성가책에 나오는 가사 중에 ‘즐겁게 노는 어린이처럼’만이 아니라, ‘즐겁게 노는 어른들도 푸르른 하늘 우러러보며’ 하느님 찬양하며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천진난만한 어른들, 그 모습이 참 좋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